주말 청계천 물가 좁은 광장에 남녀노소가 머물렀다. 가족이 함께했다. 누구나가 숨죽였다. 미간을 찡그렸다.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해서 자릴 지켰다. 호소가 있었다. 잊지 말아 달라, 그것은 재차 유족의 말이었다. 화답이 따랐다. 촛불 올랐다. 진도 앞바다에 머문 아이들의 이름을 함께 불렀다. 집회는 짧았다. 행진 줄이 길었다. 목말 탄 아이가 앞선 촛불을 바
피에로가 내내 웃는다. 그 속은 모를 일이다. 기자회견 앞자리 앉아 쉬던 청년은 그 차림새 값을 치렀다. 카메라가 많았다. 모델 노릇 하느라 진땀을 뺐다. 훌쩍 여름 날씨였다. 슬쩍 가면 올리고 땀을 훔쳤다. 유명한 햄버거 가게 앞이다. 매출 1위, 간판이 화려한 곳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에 노동자는 골병들었다니 그 속은 또 모를 일이다. 가면 쓰지
가만히 있으라. 나라님 말씀이 민심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결국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가만있지 않겠다며 청년들 나서 저기 올랐다. 박근혜는 물러가라고 현수막에 적었다. 노란색 종이에 생각 담아 뿌렸다. 오르지 마라. 그곳은 금지된 곳이었기에 경찰이 뛰었다. 진압이 빨랐다. 시위는 짧았다. 물러가라,
28일 오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조문객을 받기 시작한 27일 오후 3시부터 이날 오전 11시까지 7천여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를 비롯한 16개 시청과 도청 소재지에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
진도 팽목항에 사람이 많았다. 카메라와 천막과 경찰 버스와 구급차가 또 많았다. 줄지어 선 장의차가 차례를 기다렸고 유족 긴급후송 딱지 붙인 택시 줄이 뒤따라 길었다. 죄인이 거기 많았다. 자식 앞세운 죄, 살아남은 죄라고 사람들은 고백했다. 유배지의 하루가 틀림없이 저물었다. 노랗고 붉고 푸른 빛을 하늘에 남겼다. 바다는 그 빛을 다 품어 고왔다. 물결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오늘 공장이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됐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자녀가 그 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먹먹한 마음에 TV만 봤네요. 이렇게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할 따름입니다."세월호 참사로 노동계가 큰 슬픔에 빠졌다. 경기도 안산지역 노동자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봄꽃 흐드러져 눈부신 계절. 쉼표 찾아 나선 사람들로 꽃길이 북적거린다. 넥타이 맨 사람과 유모차 탄 아이와 모자 티 맞춰 입은 연인과 중절모 쓴 노인과 자전거 탄 사람들이 줄지어 걷느라 저마다 분주했고, 사진 남기느라 바빴다. 그 꽃 두 번 다시는 못 볼 것처럼 부지런히 움직였다. 저기 국회 운동장에 인조잔디 깔던 노동자는 봄꽃 아래 허리 굽어 바빴다.
단체 율동의 핵심은 눈치다. 우물쭈물 박자 못 타고 헤매다가도 손 쭉 뻗어 찌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면 절반은 간다. 웃는 표정 내내 유지한다면 더욱 좋다. 앞자리 고정이다. 박수와 환호가 따를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무대에 설 용기다. 자신감이다. 수천의 사람 앞이라면 더욱 그렇다. 잘 안 돼도 신 나게 흔들다 보면 하는 이, 보는 이 모두가 즐
기자회견 자리에 방송 카메라 한 대 보이질 않았다. 거기 대신 무전기 들고 분주한 경찰이 많았다. 커다란 펼침막엔 누구라도 알 만한 사람의 얼굴과 누군지도 모를 이의 영정이 줄줄이 선명했다. 사선을 넘은 이들도 한때 자랑스러워했을 회사 로고가 그 뒤로 보였다. 삼성을 넘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옆자리 섰다. 그곳에 오래도록 노조는 금기였다. 눈
가만 보니 낯익은 얼굴,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다. 또 가만 보니 낯선 모습,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홍종인씨다. 그는 자주, 또 오래 높고 비좁은 자리 올라 바빴다. 공장 근처 굴다리 움막에 들어 151일을 보냈으며, 충북 옥천 22미터 높이 광고탑에 올라 129일을 버텼다. 노조 탄압에 항의했다. 경영진의 불법행위 처벌을 요구했
펄쩍, 다 같이 뛰어 하늘에 머물기를 사진가는 바랐지만, 헛바람에 그쳤다. 다리 힘도, 박자 감각도 제각각이었으니 무리였다. 재차 삼차 그랬다. 한구석 누군가는 팔 뻗어 시늉만, 또 누구는 있는 힘껏 뛰었으니 그 바람에 펄럭펄럭, 치마저고리가 춤을 춘다. 만세 삼창은 진작에 '렛잇고' 유행가 맞춰 막춤까지 선보인 뒤였다. 뛰자고는 누가 그랬나. 여성노동
자전거 끌던 할아버지가 잠시 멈춰 뭔 일인가 살폈다. 심심했던지 손주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뒷자리 앉아 또한 그 앞을 훑었다. 광장을 끼고 도는 자동찻길에 사람만 가득했으니 별난 일. 마침 그 앞 높이 솟은 철골조 무대엔 한복 차림 사내들이 북을 쳐들고 뱅글뱅글 돌던 참이다. 누군가 격문을 읊었고 이어 횃불이 움직였다. 그 옆 봉수대에 검은 연기 솟았다. 봉
졸업식. 학사모 쓴 주인공들은 뒷줄 서고 작업복에 앞치마 두른 청소노동자가 앞줄 섰다. 떠나는 졸업생이 고마운 마음 담아 작은 선물을 준비했단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줄 맞춰 섰지만, 말이라도 맞춘 듯 돌부처다. 안아 주세요, 누군가의 뒤늦은 주문이 통했다. 서로 고맙다며 웃는다. 내내 근엄한 표정으로 뻣뻣했던 저기 뒷줄 경비노동자도 따라 웃었다. 오랜 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서울고법 판결에 따라 회계조작에 대한 국정조사·검찰수사 등 진상규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리해고자 복직에 대한 회사측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하는 주장도 거세지는 형국이다.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야당 의원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구성하기로 결의한 ‘노사정 사회적 논의 촉진을 위한 소위원회’에
마냥 웃지도, 그렇다고 내내 울지도 않던 사람들. 다들 토끼 눈을 해서는 고개 들어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거나, 스마트폰 꺼내 들고 고개 묻었다. 보다 못한 누군가 만세삼창을 제안했지만, 버릇처럼 주먹 뻗어 구호를 외쳤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법원은 판결했다. 그 자리 모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변호인은 오래전 끊었던 담배를 한 대 피워
한낮 극장 앞엔 오가는 이 적었다. 그늘 짙어 스산했던 자리에 사람들 늘어서 사연을 풀었다. 육성이었다. 마이크는 약속된 시간에 늦었다. 그러나 또박또박, 말에 거침이 없었다. 영화 이야기였다. 외압 의혹을 전했다. 상영관은 이유 없이 줄었다. 극장의 일방적인 예매취소 사례가 잇따랐다. 원성이 따라 높았지만, 시늉만 뒤따랐다.
펑 소리 따라 꽃잎인 듯 색종이 어지러이 날렸다. 꽃목걸이 걸친 당선자가 입 꼭 다문 채 잠시 말이 없었다. 시선이 자꾸 저기 먼 곳을 향했다. 꼭꼭 씹어 다짐을 전했다. 잔뜩 몸 낮춰 큰절했다. 선거는 끝났고, 약속이 남았다. 몸 낮춰 현장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탄압을 돌파하겠습니다"라고 현수막에 새겼다. 꽃길은 잠
노동조합총연맹 본부 앞에 경찰이 또 빈틈없었다. 망치로 문 부수고 들어가 헤집던 기개는 꺾이지 않았다. 기세가 되레 높아 여기가 경찰국가냐는 한탄식이 그 길에 잦다. 자진출두 하겠다고 온데 알렸지만, 그 꼴은 못보겠다며 달려드는 통에 그 문 앞이 또 한 번 난리통, 대치가 길었다. 그늘 짙었다. 바람이 그 길에 세찼다. 그러나 따뜻한 커피 한 잔 나눌 여유
겨울, 눈 쌓인 광장에 깃발이 많았고 목소리 높았다. 불통에 분통 터진 사람들 빼곡해 수만에 이르렀다니 종종 전화가 안 터졌다. 불통은 불통을 낳았다. 그곳 어디로든 뻗어 사통팔달의 요지였으나 성벽 같은 차 벽에 막혀 깃발은 자주 헤맸다. 불통은 또한 불통을 예고했다. 신통방통 샛길 열어 가며 깃발 나선 곳이 광화문사거리, 언젠가 컨테이너 산성 높았던 그
쌍용차 다니던 해고자 문기주씨가 어느 날 농민회 손팻말을 들고 섰다. 공무원 해고자 옆자리에서다.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이다. 그 자리 기자회견이 끊이질 않으니 겹치기도 다반사다. 서로 처지 모르는 바 아니었으니 섞인다고 이상할 것 없다. 평택이고 울산이고 서울 광화문 어디, 또 밀양이며 강정마을에서 사람들은 그랬다. 이어진 공무원 해고자 기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