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부의 장관으로서 여러분의 심부름을 하겠습니다. 어떤 결과를 미리 내놓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어떤 것을 합의해 달라고 안건을 저희 정부가 내놓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2018년 1월31일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 1차 회의에서 당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 말이다. 사회적 대화에서 정부는 사전에 논의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의제의 설정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사회적 대화에서 나온 ‘어록’이라고 할만큼 이 글에서 말하려는 노사중심성의 원칙을 에두르지 않고 핵심을 찔러 표현한 말
암튼 싫어요“○○○을 찍은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을 겁니다.” 끝난 총선에 대해 얘기가 오가던 중에 그가 말했다. “왜요?” 구체적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이 혐오를 유포하잖아요.”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이 판단에 대체로 동의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사람 찍어준 사람이 혐오를 유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혐오를 유포하는 정치인과 그를 지지한 사람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암튼 그런 사람들이 싫어요.”혐오를 유포하는 것은 공동체에 매우 해롭다. 정치인이 이를 퍼뜨리는 것은 치명적이다. 존
본지 4월26일자 18면 ‘“보궐선거 결과 불복” 금융노조 ‘후폭풍’’ 기사와 관련해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측은 “노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회의에서 선거포스터 입사경력 기재 내용 관련 회의 당시 기호 2번 윤 후보측에서 관련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갈등을 중단하고 투표를 실시하자는 선관위 판단에 따라 의결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경력입증 요구를 묵
“교수님, 저희 노동절에도 수업하나요?” 로스쿨 2학년 1학기, 개별적 근로관계법 수업이었을 것이다. 마침 노동절과 겹쳐 있던 수업 날짜. 다른 수업에서는 몰라도 왠지 노동법 수업이라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틈을 보아 손을 들고 질문했다. 교수님은 도저히 생각한 적 없는 질문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되물으셨다.
할 말 있는 사람들은 그걸 큰 종이에 적어 곳곳에 붙였다. 떨어지지 않고 오래 버텨 그 말글이 널리 퍼지길 바랐다. 대자보라 불렀다. 선수들은 자보라고도 했다. 잘 붙이려니 접착력이 제일 중요했고, 칼 없이 주욱 뜯어 쓸 수 있는 편의성이 다음이었다. 청테이프는 대자보와 영혼의 단짝이었다. 그뿐인가, 찢기고 부서진 무언가를 임시로 처치하는 데도 그 쓸
충남도가 지난 3일 ‘24시간 365일 완전 돌봄 실현 공공 최초 주 4일 근무제 도입’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충남도는 ‘주 4일 근무제’에는 강조의 뜻으로 홑따옴표까지 붙였다. 도는 보도자료 4쪽에 “일·육아 병행에 따른 부담 완화를 위해 공공 최초로 사실상의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한다”고 적었다. 언론은 ‘최초’
* 이 글은 영화 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영화 는 암전 속에서 “궁금한 게 뭐야?”라는 주인공 산드라(산드라 휠러 분)의 질문과 함께 공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의 안내견이 뒤따라 뛰어내려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벌어지는 남편의 추락사는 이 죽음이 자살인지, 산드라에 의한 타살인지를 가리는 법정공방으로 영화를 이끈다.하지만 법정에서 해부되는 건 추락의 진실이 아니다. 드러난 팩트들은 유명 소설가인 산드라가 외도를 했었고, 양성애자이며, 남편의 글을 훔친
경북 안동과 영양에서 살았던 안동 장씨 장계향(1598~1680)이 말년에 146개 항에 달하는 음식 조리법을 한글로 서술한 최초의 한글 음식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17세기 중엽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먹었는지 조선 시대 음식문화를 알려 주는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겉 메밀을 씻어 너무 많이 말리지 말고 알맞게 말린다. 메밀을 깨끗이 껍질 벗겨 찧을 때 미리 물을 뿌려 축축하게 해 둔다. 메밀 5되에 껍질 벗겨 불린 녹두 1복자(아가리 좁은 병에 간장, 기름을 부을 때 쓰는 귀 달린 그릇)를 섞어 가만가만 방아로 찧
지난 3월11일 유럽연합(EU) 이사회는 EU이사회 의장국과 EU의회가 잠정합의한 플랫폼노동 지침을 가결했다. 2021년 12월 EU집행위원회가 플랫폼노동 지침(안)을 발안한 후 3년 논의 끝에 ‘플랫폼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지침’이 입법을 목전에 두고 있다. 24일 EU의회가 지침을 가결하면, EU회원국들은 2년 이내 지침 내용을 국내법·제도로 이행해야 한다.지침은 크게 보면, 디지털 노무제공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플랫폼 노무제공자)의 고용상 지위의 올바른 판단을 위한 법적 추정 제도에 관한 부분(2장), 알고
“가족과 함께 살려면 나를 완전히 버려야 해”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분노와 서러움에 치를 떨던 친구의 목소리를. 동성애인이 있다는 걸 부모님께 들킨 친구는 끔찍한 언어폭력에 시달렸고, 본가에 사는 조건으로 이성애자로 살 것을 맹세하는 ‘이성애 각서’를 종용받았다. 경제적 독립이 어려웠던 친구는 그 각서에 사인한 뒤 모멸감에 몇 달을 끙끙 앓았다. 홍석천은 되는데, 내 자식이 성소수자로 살면 안 되는 주요 골자는 혐오의 손가락질에 상처받을 자식의 삶이, 혼자 외롭게 고립되어 죽을 자식의 노후가 걱정돼서였다.이런 걱정은 친구 부모님이
“최근 정부가 유연근무제를 띄우고 있고, 일부 단체에서도 필요하다고 하는 데 그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을 것 같거든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노동시간 단축이 대세인데 최근 ○○연맹은 노동시간이 줄어 임금감소를 우려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회의의 단골 소재, 기자들이 안고 있는 지긋지긋한 고민이다.
22대 총선 결과에서 확실한 것은 정부가 미래사회의 지속가능성의 수많은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에 대한 점수다. 인구위기·기후위기·지방소멸·산업과 기술의 변화, 전쟁의 위협과 물가인상 속에서 시민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일상의 지속가능성을 요구하고 있다.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누군가는 승리를, 또 누군가는 패배를 이야기한다. 승리와 패배라는 이 단적인 단어로 우리 사회를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외친다.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외침은 어쩌면 가장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 구호일지 모른다. 앞으로 3년간 한국 사회는
사회복무요원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현역병과 비교해 수월하게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군대가 아닌 각급 행정기관과 복지시설 등에서 복무한다는 점에서 현역병과 차이점은 분명하지만, 복무기관에서 사회복무요원이 겪는 문제는 현역병이 겪는 부대 내 부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사회에서 출퇴근하며 복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복무요원의 노고가 폄하되거나 겪고 있는 어려움이 외면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2023년 사회복무요원노조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거
“노동관계에서 발생하는 노사 간 이익 및 권리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정·판정하기 위해 노·사·공익 3자로 구성된 준사법적 성격을 지닌 합의제 행정기관” 중앙노동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는 노동위원회 소개 글이다.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미루는 노동위원회는 신속·공정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노동위원회법 23조(위원회의 조사권 등)는 구제신청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경우 출석·보고·진술 또는 필요한 서류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법 31조(벌칙)는 노동위원회의 보고 또는 서류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
1. 국회의원 총선거일인 4월10일이 지나갔다. 하지만 이 나라는 여전히 시끄럽다. 총선 평가 등을 둘러싸고 여야의 정당별로 계파로 갈라 비난을 퍼붓더니 지난 19일 이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제안한 여야 영수회담을 두고서 떠들썩하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대변하고 반영하겠다면서 이 나라는 온통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일 텐데, 거기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누가 뭐래도 이 나라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갈라서 차지하고 있다. 어제는 민주당이 차지했고, 오늘은 국민의힘이 차지하고 있다. 내일
구인 광고의 지원 자격에는 언제나 ‘신체 건강한 자’라고 표기돼 있다. 이는 언제나 옳은 것일까?아픈 몸 노동권을 주제로 강의나 세미나를 한참 진행하고 다니던 시절, ‘고용의 조건으로 노동자가 건강한 신체를 요구받는 것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질문 자체로 기존의 견고한 사고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지만, 동시에 적극적인 토론을 유도하고 싶었다. 그러나 뜨거운 토론이 진행된 적은 거의 없었다.특히 노동이나 건강을 주제로 활동하는 단체나 노조에 저 질문을 던지면 더욱 긴 침묵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침묵의 의미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생활하고 가치를 확인한다. 하지만 노동을 원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현상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따라서 실업은 중요한 삶의 위기이고, 고용안정은 경제성장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정책과제다.실업에는 경기적 실업, 마찰적 실업, 구조적 실업이 있다. 경기적 실업은 호황과 불황기에 따라 일자리가 늘고 주는 것이다. 마찰적 실업은 아무리 경제가 좋아도 누군가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실업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이사나 더 좋은 직장을 찾을 때 이야기다. 구조적 실업은 자동화라든가 산업구조 개편 등 경제구조
윤석열 대통령이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지 못했다. G7은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이탈리아·캐나다로 이뤄진 선진국 그룹이다. 매년 돌아가며 의장국을 선정하고 의장국 재량으로 G7에 속하지 않은 나라를 초청한다. 이번에는 인도·브라질·남아공·아르헨티나·이집트·튀니지·케냐·알제리가 초청됐다.한국은 2021년 6월 영국 정상회의에 호주·인디아·남아공과 함께 참가했다. 2023년 5월 일본 회의에 호주·브라질·인디아·인도네시아·베트남과 함께 초청받았다. 2022년 6월 독일 정상회의 때는 초청받지
어릴 적 어쩌다 새 신발을 갖게 되면, 한동안 뒤뚱거리며 다녔다. 구겨지는 게 안타까워서다. 언젠가는 혼자 시장에 갔다가 으슥한 골목길에서 빨간 벽돌 들고 위협하던 불량배들에게 신발을 뺏기고 말았다. 맨발로 돌아오는 길의 감촉이 지금껏 생생하다. 엄마 품에 안겨서야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한겨울 신문배달 알바를 했다. 자전거 끌고 새벽길을 달려 한 달
세월호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세월호를 통해 우리는 위험 상황에 ‘가만히 있으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위험으로부터의 신속한 대피는 안전 확보를 위한 기본 수칙이다. 작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열 번째 사연은 일터에서의 골든타임 사수를 위한 ‘노동자 작업중지권’에 대한 이야기다.삼성의 작업중지권삼성물산이 최근 언론의 재조명을 받았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021년 3월부터 건설현장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