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일반노조 이형진 위원장의 친구 우종원

2025-11-28     이정호
▲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박래군 형이 지난 월요일 페이스북에 “친구가 떠났다”며 이형진 민주일반노조 공동위원장의 부고를 전했다. 두 사람이 1988년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때 처음 만난 인연까지 소개했다.

이형진 위원장은 1962년 경주에서 태어나 1981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1984년에 제적당한 뒤 줄곧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대학에서 제적되면서 해병대에 입대해 제대하자마자 1987년 5월 컨테이너를 만드는 ㈜진도 부평공장에 용접공으로 들어갔다. 석 달 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지자 파업을 주도했다. 노동법 절차도 무시한 ‘들고양이 파업’이었다. 파업 이후 민주노조를 만들려고 준비하다가 회사에 발각돼 그해 11월 해고됐다. 이후 복직투쟁을 이어가며 20년 가까이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이형진 위원장은 위장취업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한 뒤 40년 동안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해온 ‘찐 운동가’였다. 박래군 형의 말대로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비정규직을 조직한다고 현장을 지켰던 친구였고, 말로만 현장에 뼈를 묻겠다는 가짜 운동가가 아니라 40년도 넘게 현장을 지킨 노동운동가”였다.

이형진 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 2년 정도 잠시 다른 길을 걷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출범한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제2과장을 맡아 누구보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의문사’한 이들의 진상 규명에 힘썼다. 이때 위원회에 제3과장으로 합류한 박래군 형과 다시 만났다. 박래군 형은 “둘은 다른 누구보다 의문사 사건을 풀기 위해 가장 많이 얘기를 나눴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형진 위원장은 서울대 동기로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우종원(사회복지학과 81학번)의 변사 사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의문사위원회에 들어갔다. 우종원은 1985년 10월 11일 밤 11시께 경부선 영동~황간역 사이 철로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우종원도 이형진 위원장처럼 경북 출신으로, 대구 달성고를 거쳐 1981년 서울대에 입학했다.

그는 1983년 11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84년 5월 출소해 2학기에 복학했다.

우종원은 1985년 8월 중순 대구의 집에 내려가 예비군 교육훈련을 받았다. 훈련 도중 수배 소식을 듣고 8월 26일 집을 나섰다. 부모는 한 달 뒤 신문 보도를 통해 아들 우종원이 삼민투 수배자임을 알게 됐다. 집을 떠난 지 한 달 보름 뒤 10월 11일 그는 철로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예비군 훈련도 받고 복학 준비까지 하던 우종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는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열차에서 뛰어내린 자살이라고 주장했지만 외상은 거의 없었다. 독서카드에 남긴 유서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필체는 우종원의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는 유독 의문사가 많았다. 대공 형사들에게 연행된 뒤 일주일 만에 산중턱 동굴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신호수, 같은 시기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시멘트 덩어리 5개가 묶인 익사체로 발견된 김성수 등 수많은 젊은이가 군사정권 아래 목숨을 잃었다.

이형진 위원장은 친구 우종원의 의문사 진상을 끝내 명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했다. 그게 한으로 남았는지, 그는 최근 투병 중에도 친구 우종원의 평전을 쓰겠다며 유가협을 수소문했다고 한다.

평생 한결같았던 그는 1990년대 이후 노동현장에서 썰물 빠지듯 떠난 수많은 ‘먹물’들과 달리 우직하게 현장을 지켰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