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경제에 맞선 이탈리아 노동자들, 항구를 멈추다
200만명이 거리로, 항만·유적지까지 멈춘 팔레스타인 연대행동
“우리는 전쟁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제노사이드에 항의하며 이탈리아 항만노동자들이 내세운 슬로건이다.
투쟁의 도화선은 제노바 항만노동자인 ‘리카르도 루디노’였다. 그는 2025년 9월 초, 가자 지구에 지원할 물품을 실은 선박인 수무드 플로틸라호의 출항을 환송하는 군중 앞에서 선언했다. “배 위의 동지들과 20분 이상 연락이 끊긴다면 우리는 유럽 전체를 봉쇄할 것입니다. 제노바 항구에서 못 한 개도 내보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루디노의 선언 이후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모든 것을 봉쇄하라’라는 구호 아래 두 차례의 전국 총파업을 단행했다.
첫 번째 총파업은 9월22일이었다. 이탈리아 일반노조연맹(Unione Sindacale di Base)을 포함한 풀뿌리 노조 연합체들이 처음 조직한 파업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1백만명 규모의 연대행동으로 발전했다. 이탈리아 노동자와 시민들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소극적인 정부를 규탄하며 24시간 총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정치적 성과도 있었다. 다음날 이탈리아 정부는 조만간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위한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0월1일 저녁, 이스라엘이 수무드 플로틸라호를 공격하자 상황은 더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탈리아노동총연맹(CGIL)과 일반노조연맹이 팔레스타인 연대를 위해 최초의 공동 파업을 결정했다. 두 번째 총파업은 10월3일이었다. 이탈리아 전역 80여개 도시에서 2백만명 이상의 노동자와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리보르노·나폴리·살레르노·제노바 항구가 닫혔고 철도와 고속도로는 마비됐다. 학생·교사·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일터와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다음날인 10월4일에는 로마에만 1백만명이 모여 이탈리아 정부의 학살 공모에 항의하는 전국적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규모가 너무 커서 행진이 끝날 때까지도 출발점에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노동자들은 2주도 되지 않아 두 번이나 파업에 참여하며 이틀분 임금이 급여에서 공제되는 불이익을 감수했다. 어떤 공장에서는 노동자의 80퍼센트가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다. 노동조합원·비조합원 노동자·이민자·이민자 자녀세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시위대 안에서 어우러졌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파업 참가자들이 단지 “더 긴 주말을 원했다”고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볼로냐의 시위 참가자들은 “우린 긴 주말을 즐기고 있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풍자’로 대답했다. 멜로니 정부의 부총리 마테오 살비니는 불법파업 참가자들에게 최대 1천유로의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도로·철도 봉쇄에 최대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새로운 안보법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노동자와 시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교통망 봉쇄를 계속 이어 갔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공장이나 항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폼페이 유적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나폴리 카포디몬테 박물관, 콜로세움 등에서 일하는 문화예술계 노동자 1천5백명 이상이 이탈리아 정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제노사이드’와 ‘부당한 폭력’으로 규정하며, 이탈리아 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화부에도 이스라엘 문화 기관과의 협정을 공개하고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현재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요구는 학살 종식과 팔레스타인의 자결권 보장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유럽의 재무장과 전쟁 경제화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이 전쟁 경제의 길로 나아가면 공공서비스 예산이 삭감되고 노동자의 임금과 권리는 축소되므로 유럽 각국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11월28일에 다시 총파업을 벌이고 29일에는 가자 지구 제노사이드에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전 세계 무역의 90퍼센트가 해상을 통해 이뤄지고, 특히 이스라엘은 해상 공급망에 크게 의존한다. 노동자의 항구 봉쇄가 강력한 투쟁 수단인 이유다. 지난 6월에는 유럽 6개국 13개 노동조합이 가자 의료시설 공격에 항의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탈리아에서 유럽 어느 나라보다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이 활발한 배경에는 오랜 기간의 풀뿌리 단위 조직화와 노동조합 활동이 있다고 한다. 연대와 평화의 언어를 구사하며 노동조합의 정치성을 되찾아가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안진이 the삶 대표(livewithal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