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고와 전향
‘새벽배송 금지’와 관련된 논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논쟁에서 주목을 끌었던 지점은 ‘안티조선 운동’에 관한 사람들의 태도였다. 연구자 박권일이 용접공 천현우의 조선일보 기고를 문제 삼자 봇물 터지듯이 그게 왜 문제냐는 항의가 쏟아졌다. ‘기레기’ 노래를 부르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조선일보 기고를 옹호하는 이 기괴한 모습에 후지타 쇼조의 전향론이 떠올랐다.
‘전향(轉向)’이란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다. 근대 사회 자체가 개인의 내면에 대한 불가침성을 전제로 성립하기에 국가폭력기구의 ‘외적’인 개입에 따른 ‘내면’의 정향 변화라는 현상은 얼핏 비근대적이고, 심지어 전근대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개인의 내면을 지탱하는 신념이 외적 폭력, 그것도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 변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일을 외적 폭력에 대한 ‘굴복’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말로 외적 개입에 따른 내면의 ‘자발적’ 변화로 해석해야 하는가. 쓰루미 슌스케, 후지타 쇼조 등이 전향을 문제 삼고자 했을 때, 1945년 이전(1933·1940년)의 전향뿐만이 아니라 전후의 전향(1945·1952년)까지도 포함했던 건 전자라기보다는 후자의 관점에서 전향을 살피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즉 이들이 문제 삼고자 했던 건 근대 일본의 정신세계가 지닌 어떤 구조적 취약성 그 자체였다.
후지타 쇼조는 그 구조적 취약성의 근원에 ‘사상적 내용의 부재’가 놓여 있다고 파악한다. 전향을 어느 무엇에서 다른 무엇으로의 이동이라 규정할 수 있다면, 일본의 전향에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에 대한 치밀한 논리적 탐구가 부재했다. 전향을 선언해야 하는 상황, 혹은 그 상황을 합리화하는 가족·민족·천황 등에 대한 ‘감정’만 존재할 뿐 실제 사상의 내용 중 어느 지점이 변했는지가 명료하지 않았다. 사상의 일관되고 치밀한 전개 없이 상황 논리에 따라 체제에 ‘자발적’으로 투항하거나 포섭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에서의 ‘전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전향은 일본의 전향과 반대로 지적 확신에 기초하고 있지 않을까.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정치문화가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정치적 탄압에 의한 전향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의 탄압이 거세면 거셀수록 탄압 대상이 지닌 보편성과 정당성도 커지는 경향이 있다. 국가가 지닌 보편성이 축소되는 만큼 반대로 저항자가 지닌 보편성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저항자를 지탱해 주는 게 바로 지적 확신이다.
문제는 저항자, 특히 지식인의 보편성이 어떠한 매개의 작용도 없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국가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사회적 중간단체 등의 매개 없이 그 자체로 보편자로 비약한다. 그렇게 자신의 내적 확신에 기초해 확보한 자율성을 근거 삼아 온갖 분야를 넘나들며 세상만사에 개입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지식인이 진영논리에 종속돼 있어서만도 안되지만, 반대로 어떠한 이해관계로부터 초월할 수 있다는 믿음도 환상에 가깝다. 타자와의 상호작용 없이 내적 확신에 기초하여 보편적 위치에 도달한 지식인에게는 공사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지지자의 옹호까지 더해지면 일말의 자기회의도 없이 자신이 말하는 게 곧 사회적으로 보편타당한 주장이 된다.
후지타 쇼조가 전후 일본의 전향이 지식인을 규제할 외적 권위와 기준 등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신의 경험적 생활영역 속 무간섭 지대로의 도피를 통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면, 한국의 전향은 내적 확신에 기초한 지식인의 무분별한 사회간섭에서 나타나는 듯하다. 이제 지식인은 어디에 글을 기고하든, 무엇을 하든 견제받지 않는다.
사상이란 결국 자기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이다. 고루한 관념 좌파의 정치질이 아니라 자기 주장의, 비판의 근거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것, 거기서부터 사상이 출현하고 비판의 조건이 갖춰진다. ‘자유로운 전향’의 시대, 아무도 이동하고자 하는 자유를 견제할 수 없는 사회, 오늘날의 한국은 비로소 이런 시대, 이런 사회에 도달했다. 어디에서 비판의 근거를, 지식인의 존립 기반을 찾고 확보할 수 있을까. 절망적이다.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 작가 (fpdlakst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