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파구는 ‘녹색산업 정책’
이달 10일부터 2주간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결국 화석연료 퇴출에 대한 명시적 의지를 천명하지 못한 채 종료됐다. 애초에 미국 연방정부가 완전히 빠져버린 이번 회의는 기후 대응을 위한 글로벌 협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다시 확인해 준 자리였다.
경제학자들은 기후변화를 지구 대기라고 하는 가장 넓은 공유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실패라고 규정한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모든 국가가 빠짐없이 참여해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국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국가가 참여하지 않은 채 나머지 나라들이 대응에 힘을 기울였다고 해서, 참여하지 않은 나라를 혜택에서 배제하기는 어렵다. 무임승차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30여년 동안 인류는 각종 국제기구를 조직해 공동 대응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파리협약이 체결된 지 10년이 되는 올해까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지 못했다. 더욱이 트럼프 정부의 존재, 최근 증폭된 글로벌 분열과 갈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기후 대응을 위한 국제 협력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개별 국가들은 손 놓고 있어야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국제 조율을 전제하지 않아도 개별 국가들이 선도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기후 대응 정책은 많다. 그리고 그 정책은 해당 국가에 유리한 혜택을 가져올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응도 촉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녹색산업 정책’이다.
경제학자들의 공통 제안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알려진 기후 대응 정책은 ‘탄소 가격’ 정책이었다.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한 ‘사회적 비용’을 계산해 배출 당사자에게 세금과 같은 방식으로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온실가스 배출 기업의 비용이 상승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며, 저탄소 기술 도입이나 업종 전환을 서두르게 되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유럽연합이나 캘리포니아주 등 70여 국가·지방정부에서 탄소 가격제를 도입했음에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 가운데 적정 수준의 사회적 비용이 부과된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최근 급속히 확산되는 정책이 탄소 가격보다 효과도 크고 정책 수용성도 높은 ‘녹색산업 정책’이다.
시장의 가격 신호에 따라 태양광·풍력 등 녹색혁신을 유도하려는 탄소 가격제와 달리, 녹색산업 정책은 국가가 태양광·풍력·배터리·전기차·그린수소·히트펌프 등 녹색산업 분야의 공적 연구개발을 직접 수행하거나 투자·금융지원을 하거나, 녹색기업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공공 조달에서 녹색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직접 키우는 정책이다.
국제적 합의와 무관하게 개별 국가들이 녹색산업 정책을 적극 실시하면 자국의 에너지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화석연료 산업 대비 재생에너지 산업 경쟁력이 높아진다. 녹색산업 비중이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은 중국이 대표적이며, 미국 바이든 정부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나 유럽연합의 녹색산업 계획 등도 모두 녹색산업 정책의 일종이다. 녹색산업 정책이 무역 갈등을 일으킨다는 비판도 있지만, 오히려 다른 나라의 전환 비용을 낮추고 녹색혁신을 촉발하는 긍정적 확산 효과가 더 크다는 평가가 많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내년부터 매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10기가와트(GW) 이상 늘리는 계획 등 녹색전환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태양광·풍력단지를 확충하는 것과 동시에 이를 국내적으로 뒷받침할 녹색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연관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내세우며 투자·산업지원 계획을 쏟아내는 것에 비해 녹색전환을 위한 투자와 산업정책의 밑그림은 여전히 모호하다. 지금이라도 탈탄소 녹색전환의 핵심 정책 수단으로서 녹색산업 정책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bkkim21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