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권 흑역사 ‘염전노예’ 종식되길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처음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2014년 2월이었다.
소금장수로 위장한 경찰이 장애인 2명을 구출한 이후 전수조사가 이뤄졌다. 당시 100여명의 장애인이 전라남도 신안군 소재 섬에서 수십 년 동안 노동력을 착취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충격적인 소식은 AP통신 등 주요 외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세계 시민들은 North Korea 가 아닌 South Korea에서 21세기에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hell’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보도했다.
국가배상소송을 통해 경찰, 노동청,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잘못도 낱낱이 밝혀졌다. 염전에서 가까스로 도망친 지적장애인이 파출소에 다다랐지만, 경찰관이 다시 염전으로 돌려보낸 사례부터 매년 조사를 통해 노동력 착취가 지속되고 있음을 알았지만 경찰관이 묵인한 사실이 밝혀졌다. 학대를 묵인한 건 지자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국가와 지자체는 도의적 책임이 아니라 법적 책임을 졌고, 피해배상에 시민들의 혈세가 쓰였다.
국가배상책임까지 진 이후 재발방지대책이 제대로 마련됐을 거라 생각했지만, 2021년 또 한 명의 피해장애인이 신안군 염전에서 탈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탈출 뒤 피해장애인은 노동청을 찾아가 신고했지만, 근로감독관은 염전주가 인정한 400만원 배상에 합의종결시켰다. 이후 재수사가 이뤄져 약 1억원에 가까운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음이 밝혀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근로감독관의 합의종결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정한 공무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위법한 조치라고 판단했고, 고용노동부는 부랴부랴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염전노예 사건이라는 인권 흑역사는 여기서 종지부를 찍을 줄 알았다. 국가와 지자체는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했고, 더 이상 염전노예는 없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2023년 8월, 5명의 인권침해 의심사례가 발견됐고, 그중 지적장애인 1명은 지난해 8월에서야 노동력 착취가 중단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피해장애인에 대한 노동력 착취가 멈춘 것도 국가기관의 노력이 아니라 염전폐업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요양병원에 버렸기 때문이다.
피해장애인은 1988년에 섬에 유입돼 지난해 8월까지 무려 36년간 노동력을 착취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4년 사건 때에도 조사가 이뤄졌지만 탈출에 실패했고, 2023년 8월 신안군 일제단속에서 발견된 뒤에도 요양병원에 버려지기 전까지 1년 넘게 추가로 착취당했다는 사실은 이런 의문을 가지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지적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은 사라질 수 있을까?”
2021년 제2의 염전노예 사건 직후인 2022년 미국은 대한민국 인신매매 피해 방지 등급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강등시켰다. 지난해 다시 1등급으로 상향조정되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다시 2등급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2021년 학대피해 장애인이 종사했던 태평염전의 생산품은 미국 관세국경보호국의 수입금지 조치를 당했다. 염전노예 등 인신매매 사건은 인권이슈를 넘어 대한민국의 국격과 통상문제 등 우리 사회 구성원 전반의 이익과도 직결되는 상황이다.
시민 300명이 26일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서를 접수한다. 공익을 현저히 해하는 작금의 사태를 그냥 묵과할 수 없기에 국가기관(경찰청·노동청·검찰청)과 지자체가 염전노예 사건 근절을 위한 노력을 다했는지, 법령위반 또는 부패행위가 없었는지에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하는 것이다. 부디 염전노예라는 대한민국 인권 흑역사가 2025년에 종식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