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뒤 부당해고 구제신청, 법원 “구제이익 있다”

통상해고 형식으로 징계절차 건너뛴 사용자 패소 … “정년 도과해도 근로자 지위 유지, 부당해고”

2025-11-24     김미영 기자
▲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음.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년을 넘긴 노동자가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법원이 “구제이익이 존재한다”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사용자가 통상해고 형식으로 해고했더라도, 해고사유가 징계해고사유와 중첩된다면 반드시 취업규칙상 징계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최수진 부장판사)는 식당 주방보조로 일하다 2023년 12월 해고된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해고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판시했다고 23일 밝혔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A씨에게 적용된 해고사유가 통상해고인지, 징계해고인지와 정년을 넘긴 뒤 제기한 구제신청이 유효한지였다. 재판부는 먼저 해고사유의 성질을 살펴 해고 방식이 적법했는지를 판단했다.

‘직원 불화·근무태도 불량’
징계·통상 해고사유 모두 해당

A씨는 주방보조로 근무하며 지각·지시 불이행·업무태도 문제 등으로 수차례 경위서를 작성했고, 2023년 9월에는 정직 1주 징계를 받았다. 이어 석 달 뒤 받은 해고통지서에는 “직원들과 빈번한 불화로 매장 운영에 타격을 입혔다” “수차례 경고에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유가 적혀 있었다. 문제는 이 사유가 취업규칙상 근무성적 불량(통상해고사유)뿐 아니라 직장질서 문란·재산상 피해 유발 우려(징계해고사유)에도 해당한다는 점이다. 법원은 “해고사유가 과거 비위행위에 대한 제재적 성격과 향후 근로관계 유지 곤란이라는 사유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해고사유가 징계와 통상의 경계에 걸쳐 있다고 본 법원은 정년 도과 뒤 구제신청의 효력도 함께 검토했다.

정년 지난 뒤 신청했지만 “근로자 지위 유지”

사쪽은 A씨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한 시점(2024년 2월19일)에는 이미 만 60세 정년을 넘겼다며, “근로자의 지위에서 벗어나 구제이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취업규칙의 정년규정과 계약 경위 등을 종합해 정년 도달만으로 자동퇴직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 회사의 취업규칙은 정년을 “만 60세 도달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년 도달을 ‘당연퇴직’으로 적시하지 않고 “퇴직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정년 도달 뒤에도 사용자의 명시적 의사표시가 있어야 근로관계가 종료된다. 더욱이 A씨는 정년 도달 약 6개월 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1년 이상 근속시 퇴직금 지급” 조항까지 포함됐다. 법원은 “계약 체결 경위에 비춰 원고와 사업장 모두 정년 도달을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사쪽에서 정년을 이유로 퇴직을 고지한 사실도 없었다. 재판부는 “취업규칙의 문언과 정년 도달 후 사용자의 태도 등을 종합하면 A씨에게 여전히 구제이익이 있다”고 결론 냈다.

“통상해고 형식 취했어도 징계절차 거쳐야”

대법원은 “해고사유가 통상해고사유와 징계해고사유에 모두 해당하면, 통상해고 형식을 취했더라도 징계 절차는 부가적으로 요구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사쪽은 인사위원회를 열지 않았고, A씨에게 징계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거나 소명기회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해고 전 “한 달의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통지했을 뿐이다.

법원은 이 점을 중대한 절차적 하자로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해고는 직장질서 문란 등 비위행위에 대한 제재적 성격을 갖는다”며 “그럼에도 징계해고 절차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것은 위법해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사용자가 ‘통상해고’라는 외피를 씌워 징계절차를 우회하는 관행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동료 간 불화·근태 문제 등 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호한 해고사유가 실제로는 징계사유와 중첩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