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추정 제도’와 ‘일터기본법’의 보완 혹은 길항 관계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이 글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올해 수행한 「노동법 밖 노동자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미발간)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편집자>
제도 밖 노동자 -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20여 년 전에는 그냥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불렸다. 2007년 산재보험법 개정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고 처음 공식화되더니 2021년 고용보험법이 개정되면서 ‘노무제공자’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플랫폼경제의 확산, 3.3% 사업소득자 중 기타소득자의 급증 등 고용환경 변화로 인해 특수고용 노동자나 노무제공자라는 개념만으로 충분히 표현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의 풍경을 바꿀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의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국내외의 뜨거운 노동 화두이다.
외국보다 많으며 빠르게 증가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프리랜서를 포함한 특수고용 노동자 규모는 종속성 지표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제노동기구, 유럽연합 등에서 활용하는 종속성 지표 결합 방식 8개를 활용해 추산한 한국의 특수고용 규모는 158만~455만 명이다. 8개 방식의 평균은 293만 명이고, 취업자 대비 비중은 10.2%이다. 한국의 특수고용 비중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때 매우 높다. 유럽근로환경조사 2021년 자료를 활용해 추산한 유럽 국가들의 특수고용(종속적 자영업자) 규모는 전체 취업자 중 평균 2.9%로 추정된다.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때 한국은 7.9%로 유럽 평균의 2.7배에 달한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중 종속적 자영업자 비율의 유럽 36개국 평균은 29.7%이다. 한국은 52.9%로 유럽 평균의 1.8배에 달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비중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Eurofound(2013)의 방법을 이용한 결과를 보면, 전체 취업자 중 종속적 자영업자의 비중이 2017년 5.2%에서 2020년 5.8%, 2023년 7.9%로 증가했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중에서 종속적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33.7%에서 2020년 37.5%, 2023년 52.9%로 증가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위험의 외부화
이들의 노동조건은 어떠한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최저시급 미달자 비중은 필요경비를 공제하지 않으면 14.8%지만, 필요경비를 공제하면 31.4%로 대부분의 임금노동 고용형태보다 높다. 주 5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자 비중도 27.6%로 모든 임금노동 고용형태보다 높다.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현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된 특수고용 노동자 최저보수제의 도입 필요성을 실증적으로 지지한다. 업무 자율성과 노동법의 보호 부재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다양한 물리적·정신적 위험에 노출시키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물리적 위험 환경(진동, 소음, 고온, 저온, 화학물질 등) 노출도는 비전형(파견·용역·호출·재택노동) 노동자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화가 난 고객을 다루는 빈도와 감정적으로 불편한 상황에 놓이는 빈도는 모든 고용형태 중에서 가장 높다. 고객으로부터 언어폭력, 원치 않는 성적 관심, 위협, 모욕적 행위, 신체 폭력, 성희롱 등을 당한 비율도 모든 고용형태 중에서 가장 높다. 이러한 결과는 위험의 외부화(externalization of risk)가 간접고용을 통해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회피하는 방식뿐 아니라, 근로계약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형태로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안전과 노동자 건강 보호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고, 상병수당 및 고객 응대 노동자 보호 대책의 적용 범위를 모든 일하는 노동자로 확대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권 보장 관련 법안들
그동안의 입법안은 크게 노동자성 오분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추정 제도와 별도의 노동자 범주를 설정해서 보호하는 법안으로 구분된다. 추정 제도는 2004년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발의안부터 시작해 매번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발의됐다. “특정 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그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자”도 근로자로 본다는 내용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고 오분류된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법 내로 포섭하는 방식이다. 현 국회에는 3개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노무제공자를 일단 노동자로 추정하고, 반대 입증을 사용자가 하도록 되어 있다. 지난 8월에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도 추정 제도와 유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원안들 중 근로자 개념 확대는 제외됐고 사용자 개념 확대만 통과됐다.
별도 범주를 설정하는 보호법안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 등의 명칭으로 3개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일하는 사람’을 “고용상의 지위나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보수 등을 받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법안들에서는 ‘일하는 사람’인 노무제공자에게 기존 노동법(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산업안전보건법)의 일부가 준용된다. 내용을 보면, 노무공급계약의 서면 작성 및 교부, 노동자 인격과 사생활 보장, 안전과 건강 우선, 근로기준법상의 휴무 보장 노력, 사회보험 비용 부담, 모성보호 관련 휴가 및 휴직 보장 노력, 성희롱 및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산재 예방 노력, 단체결성, 사업자와의 협의요청권 및 협정의 효력 보장 등이다. 기존 노동법의 일부를 준용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강행규정이 아닌 노력조항으로 되어 있고, 법 위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일하는 사람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한 경우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을 제외하면 벌칙조항이 없다.
국정과제에 포함된 노동자 추정 제도와 일터기본법
지난 9월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 중에는 “차별과 배제 없는 일터”라는 정책과제와 관련해 ‘일터 기본법 제정’, ‘노동자 추정 제도 도입’이라는 세부과제가 제시돼 있으나 내용에 대한 설명은 없다. 국정과제 수립의 토대가 된 이재명 후보 공약집을 보면 내용을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근로자 추정 제도와 관련해서는 공약집에 “위장도급 및 오분류 방지를 위해, 근로자 추정 제도로 노동관계법상 보호 대상 명확화, 기업 등은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할 수 있는 ‘반증권 제도화’”라고 서술돼 있다. 제도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우선 근로자성을 추정하고 이에 대한 사용자의 반증권을 제도화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일터기본법과 관련해서 공약집에는 “자영업자, 특수고용 및 플랫폼 노동자 등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터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법 제정”이라고 되어 있다. 기본법의 내용에 대해서는 앞서의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유사한 내용들이 서술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1호 법안으로 일터기본법을 추진하겠다고 이미 밝히기도 했다.
두 접근법 관계 설정이 중요
현행 노동법은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정의에 부합되는 노동자에게만 적용되고 있어서 특수고용 노동자는 법적 권리에서 배제돼 있다.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노무제공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개념으로 특수고용 노동자 일부 직종에 대해 몇몇 조항들이 특례 적용되고 있지만, 시행령으로 적용 직종을 제한하는 문제, 사회보험 가입의 문턱이 여전히 높은 문제, 사회보험 적용의 혜택이 일반노동자에 비해 협소하거나 현실적으로 적용받기 어려운 문제 등 특례 적용의 효과를 얻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접근법이 추정 제도와 일터기본법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한 ‘근로자 추정 제도’는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의 선결 과제이다. 노동자성 오분류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권을 복원하는 것에 해당하며, 지난 20여 년간의 노동자 투쟁과 입법 노력의 연장선에 있다. 그 외의 접근법은 모두 보완적 의미를 갖는다. 한편 일터기본법도 필요하다. 검은색(종속노동자)과 흰색(독립자영인) 사이에 경계가 불분명한 회색지대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어느 법학자가 얘기했듯이,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아무리 넓힌다고 해도 이 법 테두리 안에 모든 일하는 사람을 담기는 어렵다. 다만 추정 제도보다 일터기본법이 우선되었을 때는 두 접근법의 보완관계는 길항관계로 바뀔 수밖에 없다. 오분류로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를 제3지대에 가두는 효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입법 의도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순서를 먼저 고려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