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계약’ 착취 근절할 ‘초단기계약방지법’이 절실하다
최강연 공인노무사(노노모)
최근 청년 노동자가 과로사한 런던베이글뮤지엄 운영법인(엘비엠)의 비정규직(기간제) 비율이 무려 96.8%(726명/750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고인은 3·4·7개월 단위로 계약을 반복했고, 다른 노동자들은 수습 3개월 동안 매달 근로계약서를 쓰거나 1·2·3개월 단위 초단기 근로계약을 강요받아 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비단 엘비엠만의 문제가 아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근로 기간은 애당초 일용직, 3개월, 9개월, 1년, 무기계약직으로 잘게 쪼개져 스스로를 ‘부품’이나 ‘파리 목숨’에 비유하며 절규했다. 성과가 저조하거나 불만을 제기하거나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들에게 단계별로 계약기간이 끝날 때 ‘재계약 거부’를 하면 그만이었다. 공공부문도 도긴개긴이다.
‘쪼개기 계약’은 현행법상 불법은 아닐지라도 ‘불법에 근접한 편법’이다. 2년 이상 고용 시 발생하는 정규직 전환 의무나 1년 이상 계속근로 시 발생하는 퇴직금 지급 부담을 회피하는 수단이다. 만성적인 고용 불안을 야기해 장시간 노동 분위기나 착취 구조를 만들어 내는 노무관리 수법이기도 하다. 기간제 근로계약의 본질적인 문제는 고용의 불안정과 노동조건의 차별이다. 특히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은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인격적 종속을 심화시킨다. 헌법과 노동법에 내재해 있는 노동조건 대등결정의 원칙 실현을 통한 대등한 노사관계 형성이라는 기본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또한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기간제 노동 사용사유를 묻지 않는다. 계속 근로한 총기간에 관한 상한선(2년)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상시 업무인지, 한시적 업무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2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얼마든지 그 기간을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다. 초단기계약은 계약의 종기에 대한 결정권이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넘어간다는 점에서 그 실질은 매우 불공정한 법률관계다. 하지만 현행법으로 이런 초단기계약, 쪼개기 계약을 규제하는 규정은 없다.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초단기계약방지법’ 논의가 절실하다. 해법은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기간제법 개정안은 기간제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근로계약 종료일 1개월 전까지 근로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23조1항에 따라 해고·휴직·정직·전직·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근로기준법 24조1항에 따른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고 같은 조 2항·3항에 따른 의무를 다한 경우를 제외하고 근로계약 갱신청구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며,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경우 사용자로 하여금 이전 근로계약보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계약 체결을 요구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다음으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사유를 출산·육아·휴직 등에 따른 결원 대체, 사업 완료에 필요한 기간, 학업·직업훈련 이수 기간, 계절적 사업 등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각 사유별 사용기한을 제한하는 한편 위반 시 최초 사용 시점부터 무기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간제법 개정안에 대한 고용노동부와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수석전문위원의 입장은 주로 기업의 경영 효율성을 강조하며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 심화 현실과 노동인권 보호라는 개정안의 적극적인 입법 의의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신중론을 폈다.
2006년 소위 비정규직보호법과 노사관계로드맵 관련법이 통과되며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노동법상의 정규직 고용원칙을 깨고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고용형태의 지위로 격상시키는 법제화가 이뤄졌다. 노동시장 유연화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노동 3권을 후퇴시키는 토대도 마련됐다. 고용노동부의 2024년 하반기 사업체 기간제 근로자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간제 노동자는 188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1.8%를 차지했으며 정규직 전환율은 8.6%에 불과했다.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법제도가 현실에서 유의미하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활동은 여전히 노동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기존 판례 법리의 한계와 고용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헌법상 노동기본권의 온전한 실현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