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도 무지개가 있다

제이(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회원)

2025-11-20     제이
▲ 제이(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회원)

“저기, 무지개 동지!”

얼마 전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해 많은 사람들 속에 앉아 있던 중이었다. 누군가 나를 부르며 리플렛을 한 장 건넸다. “인쇄를 많이 하지 못해 일단 무지개 동지에게 드릴 테니 주위에도 전해 달라”는 말과 함께였다. 조끼에 달아놓았던 무지개 바탕에 ‘동지’라고 쓰여 있는 작은 원형 배지를 본 모양이었다. 리플렛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성소수자특별위원회 설치 지지 연명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돌이켜보면 학교는 정말 남들과 비슷하길 요구받는 공간이었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교복을 입어야 하고, 염색도 금지됐다(이건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바지 교복도 허용되지 않았고(지금도 화가 나는데 ‘여학생들은 치마를 입고 조신하게 다녀야 한다’는 것이 당시 교장 교사의 주장이다), 겨울 외투도 어두운 색만 입을 수 있었다. 남들과 다를 것이 허용된다면 그건 성적뿐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교사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학교라는 공간은 교사들에게도 억압적인 공간이었겠다 싶다. 교사라는 직업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어떤 직업보다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받고, 그 도덕성은 때때로 ‘정상성’으로 부당하게 치환될 때가 있다.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소수자성은 종종 교사의 자질이 없다는 근거로 쓰인다. 교사로 일하는 친구는 학생 지도와 관련해 양육자와 이견이 있을 때마다 “아이를 안 낳아봐서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아이를 낳기는커녕 이성과 결혼할 생각조차 없는 그 친구는 학생들을 얼마나 아끼는지와는 상관없이 영영 ‘훌륭한 교사’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난 3월 전교조 성평등특별위원회에서 성소수자 교사의 학교 경험과 관련해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교사의 73.6%(중복 포함)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 표현’을 접한 적이 있었다. ‘가족수당·경조사비·건강보험 등 경제적 차별’(45.1%)과 ‘가족돌봄휴가·질병휴가 사용 등 복무 차별’(40.7%)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많았다.

일부 교사는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본인의 동의 없이 제3자가 폭로하는 행위)이나 성희롱 같은 폭력적인 상황을 겪기도 했다.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하지 않았기에 직접적으로 차별받은 경험은 없지만, 이성애·시스젠더(출생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정상가족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소외감과 고립감을 느꼈다”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성소수자 교사가 안전할 수 없는 공간에서 성소수자 학생이 안전할 리 만무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가 2023년 시행한 ‘부산지역 학생 성소수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혐오 표현을 듣거나(33%), 또래 학생들로부터 “징그럽다” “피해야겠다”는 따돌림의 말(71%)을 들었다. 아웃팅·놀림·모욕·비난·폭력과 같은 부당한 일을 겪었다는 응답 비율도 39%로 높았다. 배제되지 않기 위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교사와 친구들 사이에서 정체성을 숨기고, 자신을 혐오하는 말에 동조해야 하는 것이다.

성소수자특별위원회는 제도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성소수자 조합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성소수자 교사가 잘 지낼 수 있는 일터는 성소수자 학생도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성평등한 학교를 겪은 학생들은 나아가 사회의 다른 일터들도 더 당연하게 바꿔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를 포함해 여러 공간의 무지개 동지들에게 무엇인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성소수자특별위원회 설립에 나선 동지들에게 무한한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qqdong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