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쿠팡 택배기사 고 오승용, 타인 ID로 ‘8일 연속 근무’
쿠팡 앱 ‘7일 연속 로그인 금지’ 현장 작동 안 해 … 노조 “쿠팡, 1·2차 사회적 합의 동참해야”
지난 10일 쿠팡 제주지역 대리점 소속으로 새벽배송 업무 중 교통사고로 숨진 고 오승용씨가 동료의 ID를 이용해 8일 연속 야간배송을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기 위해 업무에 사용하는 앱은 7일 연속 로그인이 불가능한데, 편법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 온 것이다.
동료 ID 사용, 관리자가 권유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는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승용씨 사망 관련 3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달 12일과 14일 열린 1·2차 조사 발표에 이어 열린 이날 발표는 △연속노동 의혹의 물증 확보 △분류작업(통소분) 실시 여부 △격주 5일제 등 쿠팡 과로사 대책의 현장 작동 여부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조사 결과 쿠팡이 관리하는 앱 시스템 ‘7일 연속 로그인’ 금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고인은 동료의 ID를 사용해 주 7일을 초과하는 연속 장시간 노동을 수행했고, 현장 대리점이 이를 권유하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대책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리점 관리자는 고인에게 “이번달 다른 아이디 배송 없어?”라고 직접 확인하며 다른 기사의 ID 사용을 권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동료기사는 ID를 빌려주면서 배송 구역 혼동을 막기 위해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타인 ID 사용관행이 업계에서 만연한 정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고인은 무려 8일 연속 야간배송을 수행하기도 했다. 대책위가 확보한 근무기록에 따르면 고인은 사고 전까지 하루 11시간30분, 주 83.4시간 초장시간 노동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택배 노동시간을 주 60시간 내로 규제하는 사회적 합의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또한 고인이 사고 직전인 지난달 27일부터 11월2일까지 처리한 물량은 하루 평균 300개 이상에 달했다.
특히 고인은 아버지 장례 중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장례를 마친 뒤 이달 8일 하루 쉬고 9일 야간 배송에 복귀했으며, 다음날 10일 결국 새벽배송 도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고인은 주 6일 고정 철야노동을 하면서도 자유롭게 쉴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었다.
격주 5일제 지켜지지 않아
분류작업 택배기사에 전가
대책위는 고인의 과로가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책위가 고인이 속한 대리점의 업무 카카오톡방을 확보해 기사 22명의 근무 및 휴무 현황(9월18일~11월10일)을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9명은 ‘격주 5일제’를 지키지 않고 있었다. 7일 이상 연속 근무한 경우도 빈번했다.
대책위는 이러한 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배경에 분류작업(통소분) 전가 관행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이번 3차 조사 과정에서 고인이 노동했던 캠프가 택배노동자에게 통소분 작업을 전가했다는 일관된 증언을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쿠팡이 지난 1월 국회 청문회에서 약속한 분류작업 배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정황이 짙다.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은 “쿠팡은 1·2차 사회적 대화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더 높은 수준을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더 높은 수준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말인가”라며 “쿠팡은 국민과 정부, 국회를 감언이설로 현혹하지 말고 지금 당장 사회적합의 1·2차 동참을 선언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족은 “제2, 제3의 오승용이 나오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 국민들과 택배노동자들 앞에서 제시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