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나라
2025-11-17 정기훈 기자
케이팝데몬헌터스의 영향 때문일까, 이 가을 고궁과 광장과 홍대 거리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난다. 화장품 가게에도, 동네 전통시장에도, 도심 가까운 산 정상에도 그렇다. 카페에 가방과 랩톱컴퓨터를 두고 자릴 비워도, 늦은 밤, 길을 나서 편의점을 이용하면서도 아무 일이 없었다며, 그들은 한국이 얼마나 안전한 나라인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남겼다. 감탄했다. 별일도 아닌데, 호들갑이라며 검은 머리 사람들은 내심 우쭐했다. 선진국 위상을 자랑스레 여겼다. 자전거는 예외라는 점까지는 그들은 알지 못했다. 빵 만들던 공장에서, 집 짓는 현장에서, 또 어느 발전소에서 끼이고 깔려 죽는 노동자가 많다는 것도 미처 몰랐을 테다. 그들은 또 이 나라의 일 처리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에 대해서도 자주 말한다. 은행과 관공서에서, 정시에 도착하는 기차를 이용하면서 그들은 놀라워했다. 늦은 밤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하는 특급 배송 얘기에 이르러서는 어메이징! 외치며 엄지척한다. 빨리빨리, 이 나라의 특징을 유창하게 말한다. 하지만 야간노동을 하던 사람들이 자꾸만 쓰러져 죽는 일까지는 그들이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람 많은 광장에 가방을 둬도 아무 일 없는 안전한 나라에 산다. 그러나 일하다 죽는 사람이 여전한 나라에 산다. 그걸 바꾸려고 깃발 든 사람들이 자주 광장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