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딜레마, 무엇이 먼저인가

이경미 메타보이스㈜ 차장

2025-11-17     이경미
▲ 이경미 메타보이스㈜ 차장

어렸을 적 나는 잠들다가 억지로 깨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크게 울었다. 그래서 택시를 탈 때면, 엄마는 항상 내가 잠들지 못하게 창문을 열거나 계속 말을 걸었다. 밤을 새우는 일도 내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학창 시절 중요한 시험이 있었을 때도, 업무가 많은 직장인인 지금도 나에게 ‘잠’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야근무를 해야 할 때는 한 주가 고되다.

최근 노동계와 유통업계에서 ‘새벽배송’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자의 수면시간과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과, 소비자 불편과 물류 일자리 감소 등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는 배송기사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진행했고, 쿠팡 택배기사 10명 중 9명이 새벽배송 금지에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정치권까지 가세하며 새벽배송 금지는 최근 민생 현안 중 뜨거운 감자다.

과연 여론은 어떨까.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11월 2주 전국지표조사에서 ‘초심야 배송 제한’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심야 배송을 일정 부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45%, ‘소비자 편익을 위해 지금처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49%로 오차범위 내에서 대등하게 나타났다. 언론에서는 유지와 제한 찬반이 팽팽하다거나 비슷하게 나왔다고 분석하는 거 같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새벽배송 지지하는 청년층의 속내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18~29세와 30대는 ‘지금처럼 유지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각 56%와 58%로, 절반 이상이 새벽 배송을 지금처럼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체 평균 49%보다 높은 비율이다. 다른 연령대와 달리 2030에게는 이제는 일상이 된 새벽배송이 가져올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걸까. 아니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이제는 새벽배송으로 대표되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제326호(2025년 4월23일)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노동에 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워라밸’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18~29세에서 54%, 30대에서 45%로, 다른 연령대 대비 높은 비율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주 4일제’를 찬성한다는 응답은 18~29세 65%, 30대 64%, ‘주 4.5일제’를 찬성한다는 응답이 18~29세와 30대 각 76%로, 전체 평균 대비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많은 여론조사를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주 4일제나 주 4.5일제는 일용직처럼 노동시간이 바로 수입으로 직결되는 직종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아무래도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논의는 고임금 화이트칼라에게는 워라밸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흐르지만, 저임금 블루칼라에게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로 연결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청년 중에서 심야노동을 현재와 같이 유지하자는 목소리가 다수로 나타나고 있는 게 어쩌면 심야노동마저 없으면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 청년의 목소리는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6개월 이상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가 2021년 10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았다고 한다. 특히 25~29세 장기 실업자 규모가 가장 컸다고 한다. 어쩌면 이 문제는 단순노동 문제만으로 봐서는 안 될 수도 있다. 즉, 삶의 질이라는 문제로 보는 의견과 함께 야간노동이라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존 인식이 공존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생계와 직결된 문제

성별과 직업별 차이도 눈에 띈다. 남성 중 절반 이상인 57%가 지금의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배송기사가 여성 대비 남성이 많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직업별로는 무려 자영업자 5명 중 3명은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아침 출근길에 보이는 쿠팡 프레시백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새벽배송이 불필요하게 빠른 배송을 초래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와 직결된 문제인 셈이다.

올해 2월 3주 한국리서치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에서도 자영업자는 ‘주 4일제’ 반대가 67%, ‘주 4.5일제’ 반대가 55%로, 다른 직업군 대비 높은 비율을 보였다. 특히 워라밸보다 돈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이 자영업, 판매·영업·서비스직, 생산·기능·노무직 등에서 전체 평균 대비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직업별로 먹고사는 방식에 따른 인식 차이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은 심야노동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모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돼

결국 새벽배송 금지는 표면적으로는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새벽에 장사를 준비해야 하는 자영업자, 야간노동을 해야만 하는 학생, 아침 일찍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 등 생계와 생활이 얽혀 있다.

그러나 원칙은 분명하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SPC에서는 2022년 SPL 평택공장, 2023년 샤니 성남공장, 올해 삼립 시흥공장까지 연이어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SPC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았고, 소비자 사이에서는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올해 7월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SPC 시흥공장을 직접 방문해 SPC의 안전관리 체계를 강하게 질책했고, 이후 SPC는 야간근무를 단축하고 안전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자가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원칙을 지키는 방향으로 제도와 법을 조정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지켜야 할 기준을 지키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질 것이다.

다각적 여론조사 필요성

이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모두 경청하는 데는 설문조사 한 문항으로는 어렵다.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파악하고, 국민의 수용도를 알아보기 위한 여론조사를 다각도로 실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량조사로 광범위한 공감도를 확인하고, 정성조사로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의견이 있는지 심층적으로 조사해 종합해야 한다.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면, 여러 측면에서 국민 다수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문항으로 물어야 한다. 가령 ‘노동 현장에서 근로자가 다치거나 숨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공감도는 매우 높을 것이다. 반대로 ‘야간에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십니까?’라고 물어도 공감하는 비율이 낮지 않을 것 같다.

그 결과를 기반으로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등 심층적으로 물어야 한다. 노동현장의 안전문제와 야간노동 자유문제 등 상반될 수 있는 여러 관점을 동시에 질문하고 이해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접근이 복잡한 사회 문제에 얽힌 여러 측면의 다양한 주장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경미 메타보이스㈜ 차장 (gmlee@metavoice.kr)
 

인용한 여론조사

전국지표조사(NBS)는 2025년 11월10~12일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인터네셔널, 한국리서치가 통신 3사 제공 무선 가상번호 전화면접 방식으로 자체 조사.

여론 속의 여론은 2025년 2월21~24일 한국리서치가 자사 마스터샘플을 활용해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 방식으로 자체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