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59분 주문시 ‘1시간 만에’ 집품부터 적재까지 ‘숨 가쁜’ 노동 - 쿠팡 새벽배송
쿠팡 물류센터·캠프·배송 노동자 집담회 … “쿠팡, 야간노동 책임 개인·사회에 떠넘겨”
쿠팡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노동자·시민사회가 정작 쿠팡은 책임에서 빠져 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쿠팡노동자의건강과인권을위한대책위원회·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노동자 잡는 야간노동, 무한속도 새벽배송 집담회’를 열었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밤 12시 이전 주문시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배송되는 서비스인데, 소비자가 물품을 주문하면 풀필먼트센터에서 배송터미널을 거쳐 택배기사를 통해 배송지로 전달된다. 이 각각의 과정에서 집품·포장·발송, 소분, 배송 등을 하는 노동자들이 집담회에 참석해 증언했다.
소비자 ‘로켓배송’ 누르면, 노동자들 휴게시간도 없어
로켓배송의 첫 단계는 배송지와 가까운 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물류센터에서 시작된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상품 입고, 재고조사, 집품·포장, 분류·적재 등을 담당한다. 고용형태공시에 따르면 CFS 전체 노동자 5만7천919명 중 3만9천334명(32.1%)이 기간제다.
자정 전까지만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배송되는 시스템 자체가 노동자들을 고강도 노동으로 내몰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장은 물류센터 오후조(오후 6시~오전 4시) 마감 체계를 설명했다. 새벽배송을 위해 △오후 9시5분 △오후 10시15분 △새벽 0시59분 세 차례 마감이 있는데, 그 시간까지 주문이 들어온 상품을 집품·포장해 캠프별로 분류하고 화물차에 실을 수 있도록 적재까지 마쳐야 한다. 소비자가 밤 11시59분에 주문한 물량에 대해 물류센터 노동자는 마감 0시59분까지 1시간 만에 이러한 과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정 지부장은 “상온센터가 아니라 로켓배송 주문이 핵심인 신선센터 오후조(오후 5시30분~오전 2시30분)는 마감이 더 빡빡하게 몰려 있을 것”이라며 “신선센터 오후조는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휴게시간도 없이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정슬기씨 업무상 부담 가중요인
‘배송 마감시간’ 지목
물류센터에서 배송캠프에 도착한 물품은 ‘헬퍼’ 등이 분류하는데, 일용직이 대부분이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1만7천742명 중 57.6%(1만219명)가 기간제다. 헬퍼·조장으로 일한 조혜진씨는 “마감을 위해 캠프에서는 ‘스캔은 1초에 1개씩 찍어라’ ‘하차 속도 빨리해라’ 등 작업속도를 높이라는 관리자들의 주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며 “새벽배송의 속도 압박은 작업장 내 관리자가 헬퍼를 감시·통제·압박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로켓배송의 마지막 단계를 담당하는 특수고용직 택배노동자들도 마감시간 탓에 쉼 없는 노동에 내몰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택배노조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에만 ‘있고’ 타 택배사에는 ‘없는’ 것들을 설명했는데, 대표적으로 △다회전 배송 △프레시백 업무 △배송 마감시간 등이다. 과로 요인으로 지목받는 것들이다. 지난해 5월 쿠팡에서 새벽배송을 하다 숨진 고 정슬기씨의 업무상질병판정서를 보면 “배송 마감시간으로 인한 정신적 긴장 상태로 업무상 부담이 가중됐을 것”으로 보고 가중요인으로 판단했다.
물류센터 시급, 야간이 주간보다 낮아
높은 노동강도에도 노동자들이 고정 야간업무를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부분 때문이다. 그런데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야간조가 주간조보다 시급을 적게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물류센터지부가 공개한 올해 한 물류센터 시급 현황을 보면 주간조는 1만220원인데, 야간 업무를 하는 오후조는 1만70원으로 150원 더 낮다. 1만70원은 올해 최저임금(1만30원)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1년 이상 근속시 각각 1만460원, 1만260원으로 200원 차이가 난다.
출고된 화물을 분류해 상차하는 허브 공정의 경우 차이는 더 벌어진다. 주간조(1만1천80원)와 오후조(1만560원) 차이가 520원이나 된다. 1년 이상 근속시 각각 1만1천320원, 1만750원으로 격차는 570원이다. 일용직 물류센터 노동자는 야간근로(오후 10시~오전 6시)시 통상임금에 50% 가산해 지급하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 노동자가 손에 쥐게 되는 임금총액은 오후조가 가산수당 탓에 더 받을지언정 시급으로 따지면 150원~570원 적게 받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택배노동자는 야간이 주간보다 배송 건당 수수료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같은 구역이면 야간이 주간에 비해 30% 정도 높다”면서도 “그런데 이전에는 주간이 900원, 야간 1200원 정도였다면 지금은 주간이 600원, 야간이 850원 정도로 매년 수수료를 삭감해 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간노동 규제 ‘공백’ 파고든 쿠팡
야간노동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성용 지부장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1년 일하고 퇴사한 뒤 퇴직금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뒤에 다시 입사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야간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 비용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주 5~6회 야간노동(저녁 6시30분~새벽 1시30분)을 1년6개월 정도 했다는 조혜진씨는 “야간노동이 끝나고 난 다음에 참았던 고통이 청구서처럼 몸에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며 “허리·어깨·손·발목 등 고통과 각종 면역질환이 몰려와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쿠팡의 새벽배송은 야간노동 관련 규제가 없는 공백을 파고든 측면이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야간노동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야간노동에 따른 보호장치가 존재하지 않아 가산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보상적 접근이 전부다. 실제로 야간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 규모에 대한 통계도 없다. 야간작업을 유해·위험요인으로 보고 휴게·휴가·휴일 보장과 시간·연속근무일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은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 없이) 수당을 지급하거나 건당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는 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이 야간노동으로 내몰리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라며 “야간노동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사회, 쿠팡이 답하고 정부가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