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야 할 밤, 줄여야 할 밤

2025-11-17     구은회
▲ 구은회 일환경건강센터 PL

도시의 밤은 깨어 있다. 새벽 두시, 팔레트를 옮기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다부진 팔뚝. 출입문 열리는 소리에 졸음을 밀어내는 편의점 알바생의 굳은 어깨. 조용한 병동을 오가는 간호사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이들의 노동이 도시의 불빛을 지탱한다.

그러나 인간은 야행성이 아니다. 우리의 생체리듬은 빛을 기준으로 작동하며, 심야의 노동은 이 리듬을 흩트린다. 야간노동을 둘러싼 논쟁은 이 명확한 과학적 사실을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진영의 문제도,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다. <무사안일> 마흔두 번째 사연은 야간노동을 ‘자발적 선택’으로 설명하는 담론에 대한 공중보건 차원의 반론이다.

야간노동 현실과 ‘자발적 선택’의 함정

야간노동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심야노동의 고됨을 알면서도 저마다의 이유로 어둠을 헤치고 일터로 향한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야간노동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야간노동은 당장의 소득을 끌어올린다. 추가로 붙는 가산수당이 월급의 빈틈을 메워주기 때문이다. 가족 부양, 돌봄 책임, 학업 병행처럼 낮시간에 움직이기 어려운 조건이 겹치면 야간노동은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대가 된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노동의 양상도 달라진다. 물류센터는 반복업무가 많아지고, 플랫폼 노동자는 대낮의 교통혼잡과 경쟁이 줄어드는 시간대를 맞는다. 병원 역시 하루의 분주함이 한층 가라앉는다. 이런 변화는 야간노동을 단순히 ‘더 힘든 일’로만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리듬에 더 잘 맞는 시간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들이 ‘야간노동은 자발적 선택’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는 주간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고, 빠듯한 임금은 야간노동에 대한 의존을 고착시킨다. 여기에 플랫폼의 배차·평점 체계는 노동자가 근무시간대를 스스로 조정할 여지마저 좁게 만든다.

이런 조건들이야말로 노동자를 밤으로 밀어 넣는 힘이다. 노동자의 자유의지보다 구조가 빚어낸 선택에 가깝다. 그럼에도 야간노동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한 일 아니냐”는 질문이 되풀이된다. 선택의 형식을 갖췄으니 결과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형적인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함?)’ 논리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몸이 말해주는 위험

야간노동을 옹호하거나 그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순간, 야간노동이 초래하는 건강침해는 구조적 위험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그때 등장하는 물음들이 있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야간노동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사망을 야간노동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식의 질문들이다.

그러나 야간노동의 위험은 개별 사건의 인과 여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인구 집단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위험의 증가다. 그리고 그 위험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그렇다면 야간노동은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까. 가장 먼저 드러나는 변화는 수면이다. 야간 택배노동자 1천21명과 일반노동자의 건강상태를 비교한 연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야간노동자는 일반노동자에 비해 “잠들기 어렵다”는 응답이 2.66배, “자는 동안 자주 깬다”는 응답이 3.07배,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다”는 응답이 2.61배 높았다.(이승윤·김승섭, 2025)

불안정한 수면은 정신건강마저 흔든다. 야간노동을 하지 않는 집단과 비교했을 때, ‘한 달에 1~9회’ 야간노동을 하는 집단은 우울증 위험이 2.72배, 불안 위험이 3.29배 높았다(허성찬 외, 2022). 또 다른 연구에서도 주간근무자보다 야간‧교대근무자의 우울증 위험이 남녀 모두에서 유의하게 높았다.(이재한 외, 2021)

야간노동은 대사·심혈관계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야간노동이 포함된 순환교대근무자의 대사증후군 유병률은 주간근무자보다 유의하게 높았고(오재일·임현우, 2018), 3교대 간호사를 대상으로 동일인의 주간근무일과 야간근무일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야간근무시 평균혈압과 맥압·심박수가 주간근무 때보다 모두 높아졌다.(정연재 외, 2007) 야간에 일하는 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시간이 쌓일수록 심혈관질환의 토대를 만드는 위험요인에 가깝다.

일부 연구에서는 여성노동자의 유방암 위험 증가 가능성도 보고된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야간노동을 ‘인간에 발암 가능성(Group 2A)’으로 분류한 이유다. 물론 모든 야간노동이 동일한 위험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험의 평균적 패턴은 명확하다.

‘위험의 층위’ 고정야간근무의 더 큰 부담

야간노동이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고정야간근무는 위험을 한층 더 키운다.

간호사 인력난과 노동강도 문제의 해법으로 도입된 ‘야간전담 간호사’ 제도는 고정야간근무가 순환교대근무보다 덜 해롭다는 인식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연구결과는 이 통념과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여러 메타분석을 종합한 리뷰에서 고정야간근무자가 순환교대근무자보다 대사·심혈관계 위험이 높았다. 허혈성 심장질환 위험은 1.44배, 비만과 혈압 위험 역시 1.4배 이상 증가했다(조현아 외, 2025).

생체리듬 적응 연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멜라토닌 분비를 기준으로 고정야간근무자 76명을 살핀 연구에서 완전한 적응을 보인 사람은 2명(2.6%)에 불과했다. 조명 조건이나 성별에 따른 차이도 없었다.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고정야간근무가 생체시계를 조정할 만큼의 적응을 이루기 어렵다는 의미다.(Simon Folkard, 2008)

최근 반복된 새벽배송 노동자 사망 사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새벽배송은 고정야간근무를 전제로 작동하며, 장시간노동과 만나면 위험을 일상화한다. 심정지·돌연사·운전 중 사망사고가 이어졌고, 일부는 과로사로 인정됐다. 몸이 야간근무에 익숙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과학적 근거가 거의 없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필수 야간노동’ vs ‘편의형 야간노동’

야간노동의 위험은 충분히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밤을 남기고, 어떤 밤을 줄일지 결정해야 한다. ‘필수 야간노동’과 ‘편의형 야간노동’을 나눌 기준이 필요하다.

먼저, 남겨야 할 밤이다. 의료·소방·전력처럼 도시의 생명과 안전을 지탱하는 필수 서비스 영역이다. 이 밤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남겨야 한다. 인력 충원, 교대 순환, 충분한 회복시간 같은 안전기준은 국가가 의무화하고, 사업장은 이를 운영 기준으로 갖춰야 한다. 특히 ‘최소 11시간 회복시간’을 의무화해 일상적 피로 누적을 막아야 한다.

반면 줄여야 할 밤도 있다. 새벽배송·심야물류·24시간 영업처럼 즉시성이 필요하지 않은 편의형 서비스 분야다. 도시의 안전과 무관한 만큼 원칙도 분명하다. 가급적 ‘밤을 덜 쓰는’ 방향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야간 처리물량 상한을 두거나 심야 가산요금처럼 수요를 조절하는 장치를 도입할 수 있다. 야간 운영에 드는 각종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그 부담이 누구에게 전가되는지 드러낼 필요도 있다. 또 단계적 감축계획을 세워, 할 수 있는 일은 밤이 아니라 낮으로 옮겨야 한다. 진짜 줄여야 할 것은 ‘밤은 공짜’라는 우리의 착각이다.

도시의 밤은 오늘도 빛나고 있다. 그러나 불빛 아래 누군가는 피로에 지쳐간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던 노랫말이 노동의 현장에서도 성립하려면, 남겨야 할 밤은 지키고 줄일 수 있는 밤은 낮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어떤 밤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의 얼굴을 결정한다.

일환경건강센터 PL (tokki79@hanmail.net)

참고 자료

- 이승윤‧김승섭(2025), Midnight delivery workers’ safety and health risks in South Korea’s platform economy

- 허성찬 외(2022), Association between working evening shifts and mental health among Korean employees: data from the 5th Korean Working Conditions Survey

- 이재한 외(2021), Comparing risk of depression between day and night/shift workers using the PHQ-9: a study utilizing the 2014, 2016, and 2018 Korea National Health and Nutrition Examination Survey data

- 오재일‧임현우(2018), Association between rotating night shift work and metabolic syndrome in Korean workers: differences between 8-hour and 12-hour rotating shift work

- 정연재 외(2007), Alteration of Circadian Diurnal Rhythems of Cardiovascular Parameters by Night shift Work in 3 Shift Nurses

- 조현아 외(2025), Comparing the Health Impacts of Fixed Night and Rotating Shift Work: An Umbrella Review of Meta-Analyses

- Simon Folkard(2008), Do permanent night workers show circadian adjustment? A review based on the endogenous melatonin rhyt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