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면세점이 입점업체 판매노동자와 교섭의무 있는 사용자라고 인정한 판결

김주연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

2025-11-12     김주연
▲ 김주연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

1. 사건 개요

원고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노조)은 백화점·면세점에서 근무하는 입점업체 소속 판매사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조합원들은 입점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뒤 백화점·면세점 매장에 파견돼 고객 응대 및 상품 판매 등에 종사하고 있다.

노조는 2023년 1월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과 롯데·신세계·신라면세점(참가인들)을 상대로 ① 공동휴식권 보장 ② 고객응대근로자 보호매뉴얼 일원화 ③ 시설물 이용 보장 및 확충에 관해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참가인들은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노조는 같은 해 9월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참가인들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아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노조는 2024년 7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그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 쟁점

노조법 81조1항3호는 사용자가 노동조합 대표자 등과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다. 이 사건의 쟁점은 참가인들이 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는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3. 법원의 판단

가.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의미: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더라도 근로조건 등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는 사용자에 해당.

참가인들은 조합원들의 원사업주인 입점업체와 파견계약을 체결해 노무를 수령하고 있으나, 조합원들과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사용자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노조법상 ‘사용자’에는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할 정도로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0년 3월25일 선고 2007두8881 판결 참조).

법원은 하나의 노무제공이 둘 이상의 사업주와 실질적으로 연관되는 다면적 노무제공관계가 확산되고 있는 노동 현실을 고려했다. 

판매사원들이 수행하는 상품판매 업무가 참가인들의 사업 수행에 상시적·필수적으로 편입돼 있고, 구조적으로 그 사업체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므로 다면적 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본 것이다.

다면적 노무제공관계에서는 여러 주체가 노동력의 이용·통제에 관여하며,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 역시 분화된다. 법원은 “이러한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의 다면적 분화 현상은 원사업주 외의 사업주가 원사업주에 비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가지는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사용자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단체교섭권의 실질적인 보장, 즉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근로자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누구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중심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오히려 실질적 지배력의 행사 여부를 우월적 지위의 유무∙정도와 곧바로 연동시키는 것은 헌법상 보장되는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구현을 도모하려는 해석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법원은 노조가 요구한 각 교섭 의제별로 참가인들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지 여부를 검토했다.

나. 참가인들의 단체교섭의무 인정 여부: 각 교섭의제는 판매사원들의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단체교섭 대상에 해당하고, 참가인들은 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므로 단체교섭 의무가 인정.

 

1의제: 연장영업 및 정기휴점 관련 사항

△연장영업을 위한 영업시간 변경시 노동조합과 합의 △명절 연휴기간 중 휴점 △월 1~2회의 정기휴점 실시

참가인들은 입점업체와의 계약에서 판매사원의 근로시간을 자사 영업시간 내로 한정하고 있으며, 입점업체와 판매사원 간 근로계약 역시 영업시간과 동일하거나 그 범위 내로 설정돼 있다. 법원은 참가인들의 영업일·영업시간 결정은 조합원들의 근무일과 근무시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영업일과 영업시간은 참가인들의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이면서 동시에 조합원들의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집단적인 관점에서 조합원 중 누군가는 백화점·면세점의 영업일로 지정된 날에 반드시 노무를 제공해야 하고, 근로자 개인의 입장에서도 영업일에 맞춰 설정되는 근무일정표에 따라 자유로운 휴가 사용이나 휴식일 선택이 제한될 여지가 있다는 점 △참가인들의 임의적인 영업일·영업시간 결정에 따라 조합원들의 근무일과 근무시간이 예상과 다르게 바뀔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1의제에 대한 참가인들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다.

2의제: 산업안전보건법 41조1항에 따른 고객응대근로자 보호매뉴얼 일원화

2의제는 고객 응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언·폭행 등 위험으로부터 판매사원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 마련을 요구한 것이다.

법원은 이를 조합원의 근무환경·복지후생·안전보건에 관한 사항으로 단체교섭 대상”이라고 보았다. 또한 △고객응대 위험에 대한 대응체계는 백화점·면세점이 배치한 보안요원·관리자·시설 등을 통해 이뤄질 필요가 있고, 그 내용을 포괄할 수 있는 매뉴얼의 마련 주체는 참가인들이라는 점 △고객 불만에 대처하고 백화점·면세점 내의 안정된 분위기와 환경을 유지하는 것도 참가인 소속 매장 관리자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에 비춰 2의제에 대한 참가인들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다.

3의제: 시설 이용 보장 및 개선

백화점·면세점 내 시설(화장실, 휴게실, 락커, 창고 등)에 대한 실질적 이용 보장과 개선 요구.

법원은 3의제 역시 조합원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직접 관계된 사항으로서 단체교섭 사항에 해당하고, 백화점·면세점 내 시설 관리에 관한 사항은 참가인들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영역에 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단순한 사업장의 ‘시설관리자’일 뿐이라는 참가인 주장에 대해서는, 상품판매 업무에 관한 판매사원들의 노무제공이 다면적 관계에 기초해 구조적으로 참가인들의 사업체계에 직접 편입돼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상, 참가인들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는 사항이 조합원들의 대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노동조합으로서는 단체교섭을 요구해 그 개선을 도모할 수 있어야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보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그 주장을 배척했다.

4. 결론 및 평가

원사업주가 아닌 이른바 ‘원청 사업주’가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는 꾸준히 쟁점이 돼 왔다. 법원은 이번에도 실질적 지배력 개념을 근거로 사용자성을 인정한 기존 판례들(CJ대한통운, 현대제철, 한화오션 등)의 연장선에서 판단했다.

대상판결은 백화점·면세점과 입점업체 간 관계가 일반적인 도급계약 형태의 원하청 구조와 동일하지 않더라도, 사용자성 판단의 기준은 원하청 여부가 아니라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여부라는 원칙을 명확히 했다. 이로써 실질적 지배력 개념의 본질을 충실히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편 1의제에서 경영권의 속성이 비교적 강하지만 동시에 근로조건과 결부돼 있다면 교섭을 거부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영권 관련 사항 역시 본질적으로 단체교섭을 통해 사용자와 노동조합이 협상과 설득의 과정을 거쳐 조율해야 할 영역이라고 설시했다. 사용자의 교섭 회피를 방지하고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보장을 강화한 판결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