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흑백논쟁’ 그만, 사회적 비용 분담 논의해야”

쿠팡 택배노동자 사망 잇따라 … “분류시간 줄이고 임금보전 필요”

2025-11-12     이용준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의 잇단 사망을 계기로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각계 입장만 강조하는 흑백구도를 넘어 구조적인 대안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쿠팡 새벽배송 과로사 ‘현재진행형’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업무상 질병 판정서’를 보면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에서 새벽배송을 하던 택배노동자 A씨가 지난해 7월24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해 5월 고 정슬기씨가 사망한 뒤 불과 2개월 만의 일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심근경색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A씨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61시간45분에 달했고, 야간노동 등 업무부담 가중 요인을 종합할 때 업무와 발병 사이 인과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쿠팡 택배노동자 과로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제주캠프 노동자가 배송을 마치고 물류센터 복귀 중 교통사고로 숨졌고, 10월과 9월에도 각각 안성캠프와 대구캠프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잇따라 사망했다.

“기술 투자·임금보전 논의하자”

노동계는 잇단 사망의 배경에 장시간 야간노동이 있다고 보고 있다. 택배노조는 지난달 22일 ‘택배 사회적대화 기구’ 회의에서 택배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새벽배송을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제도화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벌써 일부 언론과 단체가 이 제안을 ‘새벽배송 전면 금지’로 확대 해석하면서 각계 반발이 거세진 탓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9일 “새벽배송 금지 주장은 정부의 민생경제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면서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힌다”고 논평했다.

쿠팡 위탁 배송노동자 2만여명 중 절반가량이 속한 쿠팡파트너스연합회는 수입감소 가능성을 이유로 새벽배송 중단을 반대하고 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도 5일 기자간담회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있고, 새벽배송이 꼭 필요한 소비층도 있다”며 새벽배송 전면 금지에는 선을 그었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가운데 흑백구도를 넘어 구조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화 기술을 도입해 분류작업 등 배송 전 단계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물량을 조정하는 대신 일정 부분 임금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심야 노동을 완화하자는 안이다.

송관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4.5일제도 임금손실이 있다면 반대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듯, 새벽배송 제한도 임금보전을 통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자동화 등 기술 투자를 통해 분류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축소한다면 심야시간대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 지원을 강조했다.

송 연구위원은 이어 “무게나 부피 같은 배송 상품의 특수성을 고려해 배송료에 대한 가산금을 고려할 수 있다”며 “노동계·기업·소상공인·소비자 각계의 손해만 조명하는 흑백구도로 몰아갈 게 아니라 택배노동자의 생명과 건강권 보장을 위해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