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관점에서 본 노란봉투법 개정 과정

송용한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교수

2025-11-07     송용한
▲ 송용한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교수

※ 이 글은 <제2회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포럼>(2025.10.26) ‘국가폭력의 뿌리와 줄기는 무엇인가?’ 발표 내용을 기초로 했습니다.

일명 노란봉투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하청노동자가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원청 기업과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쟁의로 인한 노동조합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계는 이 법이 기업 활동을 제약하고 글로벌 투자를 저해할 것이라며 시행 유예나 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반면 노동계는 이 법이 노동자와 노동운동에 가해온 구조적 폭력을 해체하고 산업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하며 환영했다. 보수언론은 노동법 개정의 사회적 배경보다 재계의 주장을 여과 없이 대변했다.

현실에서 노동법은 의도와 달리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노동자를 보호 범위에서 배제하는 정당성 기준이 되고, 노동자의 삶을 하루하루 불안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런 노동법에 기반한 노동자 배제와 차별 구조는 이미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중 노동 시장구조에서 파견직, 계약직,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 노동자는 ‘노동법 밖’의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이다.

칼이 음식을 만드는 도구로 쓰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될 수 있듯이, 노동법과 같은 법 제도도 누가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노동자에 대한 보호 수단이 될 수도, 폭력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폭력의 유형과 국가폭력 : 폭력의 삼각형과 장기적 총체성

우리는 일반적으로 폭력을 타인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평화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폭력을 단순히 물리적 해악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는 폭력은 ‘인간이 영향을 받아 그들의 실제 신체적·정신적 실현이 잠재적 실현 가능성보다 낮아질 때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를 적용하면, 국가폭력은 ‘국가의 영향을 받아 국민의 실제 신체적·정신적 실현이 잠재적 실현 가능성보다 낮아질 때’ 존재한다.

요한 갈퉁은 폭력 유형을 크게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이라는 세 가지로 분류하고, 직접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소극적 평화로, 구조적·문화적 폭력도 없는 상태를 적극적 평화로 보았다.

직접적 폭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구체적인 폭력 행위자가 존재하고 물리력과 같은 형태로 가시적 형태로 행사되는 폭력이다. 예컨대 노동조합이 파업할 때 경찰이나 회사의 구사대, 또는 용역 깡패 등이 물리력을 사용해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는 형태다. 이런 유형의 직접적 폭력은 법제도에 근거해 공무수행이라는 형식으로 합법적으로 행사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법적으로 이뤄진다.

구조적 폭력은 폭력을 행사하는 구체적인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사회 구조 자체에 내재돼 불평등한 권력과 불평등한 삶의 기회로 나타나는 유형이다. 구조적 폭력은 구조 자체에 내재돼 있어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노동법과 제도는 사회 질서를 규정하고 유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구조 중 하나로, 그 기능과 설계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법제도는 구조적 폭력의 핵심 기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법제도를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예컨대 노동법의 영향을 받아 사회 계층이 나눠지고 불평등한 구조가 만들어지지만 우리는 노동법을 폭력기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노동법에 근거해 법 집행 기관이나 국가 기관이 직접적 폭력을 행사할 때 노동법을 오히려 직접적 폭력의 정당한 근거로 생각한다.

문화적 폭력은 종교, 이데올로기, 언어, 예술, 과학 등 문화의 상징적인 영역 중 직접적 폭력이나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합법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유형을 의미한다. 예컨대 정보를 전달하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수단인 언론이 경찰의 폭력적 과잉진압을 사회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 등을 들어 도덕적으로 용인 가능한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 때 문화적 폭력이 행사되고 있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개정 과정에서 보수언론이 기존 노동법이 가져오는 사회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고, 사용자 일방의 입장을 편향적으로 보도하며 기존 사회 구조 유지를 용인하도록 하는 것도 문화적 폭력의 한 형태다.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이라는 형태의 세 가지 유형의 폭력은 어느 한 사건에 머물지 않고 서로 연계된 형태의 ‘폭력의 삼각형’ 속에서 총체적으로 장기간 지속된다. 폭력의 장기간 총체성의 예는 과거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자동차 파업’을 들 수 있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파업이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없는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이를 보수언론 등은 정부와 사용자 입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파업을 반대하는 여론을 만들었다. 당시 정부는 헬기와 무장 경찰 등을 동원해 파업을 무력으로 강경진압을 했고, 이후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했다. 이후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은 16년 동안 이어지며 조합원들에게 법적·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노동자들은 트라우마와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이 손배소송은 올해 9월에서야 KG모빌리티가 손해배상 확정금액을 집행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종결됐다.

사회적 관계 응결체로서의 국가

국가의 본래 역할은 사회 구성원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고, 공공의 이익과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공공의 이익은 종종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국가는 공공선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이를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국가는 12·3 내란과 같이 스스로 공공선을 훼손하거나, 소수의 이익을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며 반대 의견을 억압한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국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추상적 상상에 기반해 국가의 역할을 기대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국가는 정부와 같이 어떤 하나의 주체로 특정할 수 없다. 밥 제솝(Bob Jessop)은 그의 책 <국가론>에서 국가란 영토, 국가 기구, 인구, 그리고 국가 관념이라는 네 요소로 구성된 복잡한 제도적 앙상블이자, 국가 안팎의 사회적 세력들의 전략적 각축이 응축된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정의한다.

밥 제솝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권력의 행사 주체는 기존의 입법, 행정, 사법부와 같은 정상적인 국가 기구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필요성을 제기한다. 밥 제솝은 ‘심층 국가’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권력 행사는 국가 기구뿐 아니라 국가 기구와 연계된 외부 조직을 포함한 권력, 즉 심층국가 세력에 의해 행사됨을 지적한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국가폭력의 주체는 고용노동부, 경찰, 검찰뿐 아니라 기업, 언론, 사설 용역업체 등까지 확장해 생각해야 한다.

국가폭력 관점에서 본 노동법 개정

폭력의 총체성 관점에서 보면, 당장 물리적 폭력이 없다고 해서 폭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폭력은 보이지 않는 법제도와 같은 형태의 구조적 폭력이나 문화적 폭력 형태로 유지되고 언제라도 직접적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국가폭력이 국가기구뿐 아니라 국가기구 외부 세력에 의해서도 행사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국가폭력 행사 주체는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국가폭력은 정부가 바뀌더라도 정부 외부의 세력을 통해 유지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 현 정부는 기존 노동법이 가져오는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 법 개정 추진을 약속하고, 노동부 장관도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을 임명했다. 이는 제도에 내재한 구조적 폭력을 개선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지난 9월 통과된 노란봉투법은 그 첫걸음이며, 앞으로 다른 노동관계법 개정도 기대된다.

그러나 법 개정에 반대하는 세력과 보수언론은 ‘국가 경쟁력’과 ‘공공의 이익’을 내세워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앞으로의 개정 과정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반복될 것이다.

국가폭력의 관점에서 노동법 개정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노동에 대한 국가폭력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며 누가, 어떤 명목으로 그것을 유지·재생산하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