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 만든 XX, 포괄임금제 없앤 OO
포털에 ‘포괄임금제’를 검색하면 나오는 자동완성 키워드 중 하나는 ‘포괄임금제 만든 XX’다. XX는 욕설이다. 어떤 유저들은, 포괄임금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이고 어느 대통령이 도입했는지 부단히 찾고 있다. 공짜 야근의 빌미가 되는 제도의 기원을 알아야만 했다.
그 키워드를 처음 봤을 때, 수없이 키보드를 두드렸을 노동자를 떠올렸다. 프로젝트 기간이라며 매일 새벽에 퇴근하고도 초라한 임금명세서를 받아 들어야 했을 IT노동자, “근무시간을 산정할 수 없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을 사무직, 포괄임금제가 부당한 줄 알면서도 선택권이 없어 불리한 근로계약서에 서명했을 사회 초년생들. 분노와 무력감이 XX에 담겨 전해졌다.
지난달 <매일노동뉴스>가 보도한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 과로사 의혹 사건에도 포괄임금제가 등장한다. 주 80시간을 일하다 숨진 26세 청년은 포괄임금제 일종인 고정OT 근로계약을 맺었다. 회사는 스케줄 근무를 하는 매장노동자에게 이런 계약을 사실상 강요해왔다. 지문인식기·애플리케이션·CCTV 같은 근로시간을 확인할 수단은 충분했지만, 연장근로수당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사후 승인’으로만 지급됐다. 한 주 60시간에 달하는 만성적 과로 속에서 청년의 하루는 온종일 일터에 매여 있었다. 청년은 끝내 숨을 거뒀다.
포괄임금제는 흔히 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에 비유된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약정한 근로시간 안에서 언제든 연장근로를 지시할 수 있다. 약정을 넘어 일하면 추가 수당을 줘야 하지만, 근무시간을 제대로 기록하는 일은 드물다. 런베뮤 노동자 증언대로 스케줄표를 주 52시간 이하로 사후 조정하거나, 휴무일 근무를 강요하는 일도 다반사다. 현장에서 포괄임금제는 실제로 ‘무제한 연장근로 이용권’처럼 쓰여, 취약한 노동자의 시간과 건강을 갉아먹었다.
런베뮤 사건은 장시간 노동·쪼개기 계약·포괄임금제 같은 악습이 여전히 일터를 지배하는 현실을 다시 드러냈다. 언젠가 자기만의 매장을 꿈꾼 청년의 명복을 빌며, 우리는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포괄임금제 전면 재검토를 공약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산재 근절에 직을 걸겠다”고 밝혔다.
과로는 사람을 신체적·정신적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포괄임금제는 ‘산재 근절’을 선포한 정부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시간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도록 포괄임금제는 폐지돼야 한다. ‘공짜 야근’이 몰상식이 되는 세상이 오면, 포괄임금제 존재는 믿기 어려운 옛이야기로만 남을 것이다. 그때쯤 검색포털 키워드는 ‘포괄임금제 만든 XX’ 찾기 대신 ‘포괄임금제 없앤 OO’가 자동완성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