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보건복지부예산, 총액 늘었지만,내용 ‘미흡’
‘자연증가분’에 예산 확대 폭 크지 않아 … “언어는 복지국가, 논리는 산업국가”
‘2026년도 보건복지부예산안’ 총액이 늘었지만, 질적 개선 측면에서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참여연대는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26년도 보건복지부예산안 분석’ 토론회를 열었다. 내년도 보건복지부 총지출 예산안은 137조6천480억원으로, 전년 대비 9.7% 증가했다. 하지만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자연증가분이 적지 않았고, 공공보육과 필수의료 강화는 정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보육·노인일자리 특별회계 의존 확대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는 보건복지부 소관예산안을 △기초생활보장 △아동보육 △아동·청소년 △노인 △장애인복지 △사회복지 전달체계 △보건의료 등 세부 영역별로 분석했다.
기초생활보장 예산안은 기존 제도의 유지·관리 중심 확대라는 점에서 아쉽다고 평가했다. 관련 예산안은 23조9천868억원으로 9.7% 늘었지만, 정책 변화라기보다 기준중위소득 인상과 변동에 따른 급여액 증가가 주도했다는 것이다. 특히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미이행 △의료급여 본인부담금 정률제 전환 가능성 미해소 등 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동보육 분야는 어린이집 예산 감액 기조가 지속되며 공공보육 비중 50% 목표와 괴리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민간 의존도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특별회계에 의존한 재원 구조에 대한 우려가 높다고 했다. 아동보육 예산안은 9조2천546억원으로 9.2% 늘었지만, 기존 일반회계에서 영유아특별회계·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로 재편됐다. 다만 예산안 순증으로 가계의 유아보육 부담이 다소 완화된 점, 교사 1명당 아동 비율이 개선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노인복지 예산안도 29조3천161억원으로 6.8% 증가했지만, 전체의 83% 이상을 기초연금이 차지했다. 최 교수는 이마저도 기초연금 수급자 증가와 물가상승률에 따른 자연 증가분이라고 분석했다. 기초연금을 제외하면 실질 증가율은 5.8%에 불과하며, 돌봄·건강·사회참여 분야가 사실상 정체 상태란 지적이다.
아울러 노인 분야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을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로 전환한 점을 두고 중앙정부의 부담 완화책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또 지방자치단체로의 재정적 부담 전가는 지자체 간 재정력 격차에 따른 삶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은 복지의 양적 확대에도 사회복지 전반의 질적 개선이나 구조적 전환으로 도약하지 못했다”며 “국민 삶의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 증명의 정치라는 국정 원칙이 무색한 미완의 예산안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 총량 늘었지만 R&D 쏠림
김진환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교수는 보건의료 예산안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안은 9.7% 늘었지만, 보건 부문만 보면 3.7% 증가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사회복지 부문이 10.7% 증가한 점과 대조적이다. 세부적으로 보건의료 항목은 4조6천707억원으로 11.8% 늘었으나, 건강보험 증가폭이 1.3%에 머물며 전체 증가율을 끌어내렸다.
특히 보건의료 부문에서 연구개발(R&D)만 급증한 점을 우려했다. 정부의 인공지능(AI) 정책 기조와 맞물려 보건의로 R&D 예산안이 32.8% 늘었지만, 정부가 표면적으로 내세워온 ‘필수·공공의료 확충’과 실제 재정배분 방향은 괴리가 있다는 비판이다.
공공의료 ‘인건비’보다 ‘AI’ 구축 집중
올해 공공의료 예산안의 핵심은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다. 겉으로는 3천288억원으로 전년(764억원) 대비 330% 넘게 급증했지만, 기존 ‘혁신지원사업’ 이관분을 제외하면 실질 증액은 155억원(증가율 5%)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액 방향성도 논란이다. 이번 예산안에는 권역책임의료기관·국립대병원 AI 진료시스템 구축비 142억원이 새로 반영된 반면, 지방의료원 시설·장비 현대화는 58억원, 파견 의료인력 인건비는 75억원에 그쳤다.
김 교수는 종합적으로 지역 의료 인프라·인력 부족 해소보다 대형병원 AI 인프라 강화에 재원이 쏠렸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AI 구축비 142억원을 인건비로 전환했다면 지역 파견 의료인력을 기존 75명 수준에서 200명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결국 이번 예산안은 복지국가의 언어를 쓰지만 산업국가의 논리로 짜였다. 공공의료와 건강보험 재정은 제자리이거나 후퇴한 반면, 바이오헬스와 디지털헬스 R&D는 급팽창했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니라, 재정의 사회적 방향성을 되돌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