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5명 식수’ 급식조리사 폐암 업무상 질병

서울행정법원 “조리흄·세제 노출, 질병 악화시켜”

2025-11-06     김미영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조리원당 식수인원이 25명을 넘지 않았더라도 학교 급식실에서 일한 조리실무사의 폐암은 업무상질병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 나왔다. 법원은 조리 과정에서 발생한 조리흄뿐 아니라 세제에 포함된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점도 함께 고려했다. 그동안 급식실 조리종사자들의 폐암 산재가 근무기간이나 식수 인원 규모를 이유로 불승인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만큼, 급식노동자의 ‘직업성 암’ 인정 범위가 확대될지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은 급식노동자 A씨(46)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5일 밝혔다. 법원은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기름연기)과 세척제에 포함된 유해물질에 장기간 노출돼 폐암이 발생하거나 악화됐다”며 공단의 요양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A씨는 2010년 4월부터 2022년 8월까지 경남 밀양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12년4개월간 조리사로 일했다.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하면서 하루 평균 50인분(조리사 2명)의 점심을 준비했다. 주요 조리 방식은 볶기·굽기·조림 등 열을 가하는 요리였고, 요리에 사용하는 기름량은 10리터가량이다.

그러나 급식실에는 후드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조리 시 창문을 열고 벽면 환풍기 1대만으로 환기했다. 재판부는 “유해물질이 충분히 배출되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A씨는 근무 중 천식·기관지염·폐렴 등 호흡기질환으로 잦은 진료를 받았고, 결국 2022년 8월 폐암 진단을 받았다.

공단은 A씨의 요양신청을 두 차례 불승인했다. 조리인원 1인당 담당 식수 인원이 적고, 하루 근무시간이 4시간에 불과해 유해물질 노출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감정의료기관 감정의는 “조리흄과 청소세제 노출로 천식이 악화됐고, 시간이 지나며 면역이 약화돼 기관지염과 폐렴이 이어졌으며, 이후 폐암 진행속도가 정상보다 빨라졌다”고 진단했다.

재판부는 “의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지 않더라도,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된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조리흄과 세제에 의한 노출로 폐암이 발생하거나 적어도 자연적 진행경과 이상으로 악화됐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식수 인원’이나 ‘근무시간’ 등 정량적 기준만으로 유해노출 여부를 판단하던 기존 공단 심사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은수 변호사(법무법인 더보상)는 “재판부는 조리흄 등 발암물질에의 지속적인 노출과 열악한 환기시설, 그리고 이로 인한 폐기능 저하, 폐암 진행 가속 등 질병의 임상적 경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그동안 장기근무자나 다수 인원을 담당한 조리종사자만 산재로 인정받던 관행을 넘어, 근무연한이 짧고 식수인원이 적은 조리종사자에게도 업무관련성을 인정한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