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R에 대한 이해와 편견
유재길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지난 30여년간 노조활동 현장에서 수많은 갈등과 맞닥뜨리며 수많은 싸움을 치러왔다. 해고, 억울한 사고, 심지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동료들까지. 그들의 아픔 앞에서 내 가슴은 몇 번이고 무너져 내렸다. 그때마다 나는 자문했다.
‘이 싸움의 끝은 어디인가?’
서로에 대한 분노와 불신만이 쌓여갔고, 결국 그 싸움의 결말에는 진정한 승자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잃은 것은 단순한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과 ‘관계’라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노동운동의 절반은 싸움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 싸움으로 인한 상처였다.
한때 나는 대립과 저항이 정의라고 믿으며 싸움의 최전선에서 외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모든 갈등이 싸움으로만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와 조정, 그리고 상호 이해를 통해서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나를 완전히 새로운 길로 인도했다.
현장 활동을 마무리하던 중 우연히 ‘대안적 분쟁해결(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교육에 참여하게 됐다. 그전까지 ADR이라는 개념은 낯설고, 노동 문제는 싸움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 있었다. 조정이나 화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론처럼만 느껴졌다. 하지만 교육이 진행될수록 내 생각은 바뀌었다. ADR은 단순한 조정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누가 옳은지 가리려고 하기보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묻고 들여다보는 태도였다. 대립하는 양족의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찾기보다, 서로가 입은 상처를 함께 바라보는 소통의 과정이었다.
교육 중 직접 조정자 역할을 맡아 대화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나는 깨달았다. 상대방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강력한 힘인지 말이다. ADR 교육은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었다. 지난 30년간 싸움에 익숙해진 나는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의 틀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ADR은 ‘이기지 않아도 되는 방법’ ‘서로 조금씩 조정하며 함께 살아남는 길’을 제시했다. 그것은 법이나 규칙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최근 설립을 준비 중인 (가칭)분쟁해결지원재단은 이러한 가치를 바탕에 두고 있다. 이 재단은 중앙노동위원회를 포함해 특정 기관과 무관한 민간 독립형 비영리 법인이다. 노동계·경영계·공공부문·전문가 등 ADR에 대한 이념과 철학을 공유하는 다양한 주체가 균형 있게 참여해 이사진을 구성한다. 이런 균형 구조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노동 문제를 다루는 어떤 조직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신뢰의 중간지대’를 재단이 만들어가고자 한다.
ADR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다. 단지 사람이 마주 앉아 서로의 입장을 듣고 ‘어떻게 하면 함께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바로 이 단순한 과정이 우리 사회가 가장 배우지 못한, 가장 어려운 기술이다.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싸움은 선택일 뿐이다. ADR은 문제를 푸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준다.
나는 이제 현장을 떠났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동료들을 여전히 떠올린다. 하루하루 버텨내며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 조직을 지키려 애쓰는 간부들, 그 모두가 갈등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조용히 말하고 싶다.
“ADR을 배우기를 권장한다. 대화로 세상을 바꾸는 길이 있다.”
ADR은 결국 공감의 언어이자 신뢰의 기술이다. 그것은 투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 이후에도 남아야 할 관계를 지키는 일이다. ADR은 우리 세대가 후배들에게 남길 가장 값진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