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동시간 단축 ⑥] 시간주권 다시 찾는 계기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2025-10-15     김종진

1919년 ILO 1호 협약은 ‘하루 8시간 노동’이었고, EU는 1993년 건강 및 안전조치 일환으로 ‘주 35시간제’를 채택했다. 이제는 일의 ‘필요 영역’과 ‘자유 영역’을 구분하고, 새로운 노동체제를 논의할 시점이다. 주4일제 네트워크 소속 전문가들이 사회적으로 달성해야 할 노동시간 변화의 필요성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노동시간들

▲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국정과제로 실노동시간 단축이 발표됐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천700시간대에 진입시키는 게 목표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개인에게는 수면과 생체리듬을 비롯해 가족생활과 사회생활을 교란해 피로, 기분, 건강과 안전, 작업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노동시간 단축은 다양한 영역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체제 전환에 있어 장애요인이 적지 않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고용과 임금 그리고 노동시간은 이윤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치열한 쟁점이 된다. 그럼에도 인류가 지속 가능한 사회와 노동을 위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면 더 중요한 목표를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연장근무나 야간노동은 물론 교대제와 연차휴가 및 유급병가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연차휴가는 물론 돌봄휴가 등 다양한 일과 쉼의 휴식은 제도의 지체로 논의가 안 되고,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중요한 과제임에도 관심 밖이다. 더는 무한 노동으로의 회귀를 방치하면 안 된다. 사회·조직·작업장 그리고 노동자 개인의 시간빈곤(time poverty)에서 벗어나, 시간주권(time sovereignty)을 찾는 것은 노동 의제로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실증적·경험적 연구 부재 속에 과잉 우려

최근 논의되는 주 4일 근무제나 주 4.5일제와 같은 정책은 낯설다. 통상 주 40시간이나 38시간 혹은 35시간 등이 서구 유럽의 노사관계 의제였기 때문이다. 논문도 1970년대 4일 근무제 연구가 일부 논의한 바 있지만 실제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했다. 2020년 이후 해외 주 4일제 시행 및 시범사업 연구논문은 29편 정도에 불과하다. 주로 논의 과정(8편), 시간주권(3편), 여가시간(5편), 젠더·돌봄·경력(5편), 생산성(8편) 5개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다. 산업 및 업종 수준의 연구조사가 부재한 상황에서 주 4일제나 4.5일제 정책적 함의를 선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비약과 주의·주장이 녹아 있다.

주 4일제 시범사업을 추진한 아이슬란드 뿐만 아니라 프랑스 리옹, 스페인 발렌시아, 덴마크 베스팀머란트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생산성 하락과 일자리 감소 등은 보고되지 않았다. 우리도 과거 두 차례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생산성과 일자리가 모두 증가했다. 1989년~1991년 사이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 노동생산성(3.6%)이 상승하는 동시에 일자리(4.7%)도 증가했다. 2004년~2011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면서 10명 이상 제조업의 1인당 실질 부가가치 향상(1.5%)과 일자리 증가(5.2%)도 경험했다.

2023년부터 스페인은 중소기업 대상 24개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최소 10%의 노동시간 단축을 목표로 한다. 참여 기업에는 임금 보조 비용 등 장려금을 지원한다. 폴란드는 2026년부터 공공과 민간부문에서 20% 노동시간 단축을 목표로 주 4일제(35시간)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 밖에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코틀랜드, 웨일즈, 호주 등에서 주 4일제 시범사업 논의가 활발하다. 최근 미국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뉴욕과 같은 지방정부에서도 시범사업 법률안이 발의된 상태다. 독일 적십자병원(DRK)이나 프랑스 파리 교통공단(RATP), 스코틀랜드 파산신청공단(AiB)부터 프랑스 유통물류 엘데엘세(LDLC)까지 ‘생산성’과 ‘직원 만족’ 이라는 성과를 도출한 사례가 적지 않다.

주 4일제나 4.5일제 등 다양한 노동시간 단축을 실험하는 곳에서 국가의 제도적 지원과 노사 합의 과정을 통해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때문에 우리도 주 4일제 및 4.5일제 시범사업의 생산성과 잠재적 비용 상쇄 등 긍정적 측면을 찾을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사회와 노동을 위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면 더 중요한 목표에서 해법을 찾을 시점이다. 100년 전에 설계된 고정된 시간의 틀, 이제는 바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