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서] 파견노동자가 증명해야 하는 것들
파견노동자가 또 퇴직금 상담을 왔다. 파견노동자 류○○씨는 파견회사를 통해서 반월공단에 있는 A전자회사에서 31개월 동안 일하다가 A전자회사의 관리자와 트러블이 있어서 일을 그만 뒀고, 파견회사가 퇴직금을 주지 않아 노동청에 신고했는데 노동청에서 “피진정인이 귀하를 고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기간은 1년이 되지 않아 퇴직금 지급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행정종결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류○○씨의 통장입금내역에는 31개월 동안 입금자 명의에 ㅁㄹ시스템, ㅈㅎ테크, ㅌㅇ테크, ㅇㅇㅍ테크, ㅅㅇ테크, ㅌㅇ테크, ㅌㄹㅍ에이, ㅅㅎ, ㅍ시스템 등 9개 회사가 찍혀 있었다. 아는 회사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 “ㅁㄹ시스템”만 아는 회사이고, 다른 회사는 모르는 회사라고 했다.
류○○씨는 일하는 동안 파견회사 관리자는 계속 같고, 통장에 입금회사 이름이 왜 바뀌었는지 설명을 들은 적도 없고, 근로계약서를 쓴 적도 없고, 사직서를 쓴 적도 없는데 류○○씨의 소속 회사는 8번 바뀌어 있었다.
대부분의 파견회사는 6개월에 한 번씩 회사 이름을 바꾼다. 파견노동자의 재직기간을 1년 미만으로 만들어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6개월을 초과해 파견노동자를 파견·사용할 수 없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규정을 회피하려고, 그리고 4대 보험료,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려고 서류상 폐업을 하고 전화번호, 사무실 주소는 그대로 두고, 파견회사 이름과 대표만 바꾼다.
그런데 노동청은 파견회사들은 서로 다른 회사라고 한다. 파견노동자 류○○씨가 퇴직금을 받으려면 9개의 파견회사가 같은 회사라는 것 또는 파견회사들이 고용승계를 했다는 것을 근로감독관에게 증명해야 한다. 파견노동자들이 같은 곳에서 일을 해 왔고, 파견회사 관리자가 같고, 파견회사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같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사직서도 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1년 이상 계속 근로”가 증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위와 같은 사례에서 근로감독관을 잘 만나 어떻게든 퇴직금을 받은 파견노동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불법파견 구조 속에서 어떤 노동자는 근로감독관을 잘 만나 퇴직금을 받고, 어떤 노동자는 퇴직금을 못 받고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파견회사가 바뀌더라도 사용사업주가 같다면 고용승계로 보고, 1년 이상 계속근로를 인정해서 퇴직 당시 파견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현재 법상으로 고용승계로 보기 어렵다면 파견법을 개정해서 파견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파견노동자는 일하는 시간도, 일하는 기간도, 담당 업무도, 사용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문상흠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공인노무사 (moondoraj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