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층적 대화 시대] 경사노위 역할은 “사회적 대화 기획·지원 플랫폼”
경사노위 밖 대화체 이미 가동 중 … “전문성 키우고 독립기구로 재편”
개점휴업 상태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역할에 물음표가 찍히고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정년연장 TF 같은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고, 이 대통령은 산업·지역·업종별 중층적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 밖에서 사회적 대화가 일어나면서 경사노위의 지위가 모호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사노위가 중앙 차원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는 기관에서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대화를 기획·지원하는 플랫폼 기관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 주도성과 고용노동부 의존성 탈피를 위한 조직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일각에선 경사노위 무용론까지
“사회적 대화 상징, 여전히 역할 필요”
이재명 정부가 산업·지역·업종별 중층적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강조한 이유는 사회적 대화 진행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논의 주제가 제한돼 있고, 노사정이 현안을 잘 파악하고 있어 대화와 합의가 어렵지 않다. 실제로 지역별 대화는 ‘광주형 일자리’ 등 상생형 일자리를 만들어낸 바 있고, 노사민정협의회 같은 조직도 가동 중이다. 업종별 대화에서는 노조가 산별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사용자들 역시 관심을 갖는 주제가 많다.
문제는 유일한 제도적 사회적 대화체였던 경사노위의 지위다. 중층적 사회적 대화가 활성화하면 역할과 권한이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경사노위는 ‘1998년 노사정 대타협’ ‘2015년 9·15 합의’를 도출했고, 의제·업종별 대화체를 경사노위 내에서 만들어 운영해 왔다. 그런데 중층적 대화가 강화되면 경사노위 밖에서 대화가 일어나고, 경사노위 위상과 의미가 약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경사노위 무용론도 일각에서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경사노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사회적 대화의 주도권을 내려 놓되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대화를 기획하고 지원하는 역할이 새로운 시대 경사노위의 역할이라는 지적이다. 한국 사회적 대화의 상징이면서,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사회적 대화가 난립하지 않도록 기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경영학)는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한 노사정의 역할과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를 통해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의 플랫폼 역할로 거듭나야 하며, 이를 통해 노사단체와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층적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앞장서 주장해 왔던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칫 관료와 정당 중심의 의사결정에 사회적 대화가 임의로 동원되거나 활용될 우려가 있고, 사회적 대화의 위상이 격하할 수 있으며, 조율되지 않은 의사결정이 사회적 대화 결과를 유실시킬 수 있다”며 경사노위 역할을 강조했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는 “경사노위는 중층적 대화의 허브로서 작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정책과제 몰입 안 돼, 독립기구화”
전문가들은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 플랫폼 역할로 나아가기 위해 정책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의제·지역·업종별 사회적 대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흥준 교수는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정책적 우위를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전문위원들의 전문성이 발굴되고 발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독립기구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 교수는 “경사노위가 국민권익위나 국가인권위 같은 독립기구로 재편된다면, 정부 정책과제에 몰입하기보다 사회적 대화 자체에 충실할 수 있고 예산과 인력을 독자적으로 꾸릴 수 있어 전문성을 높일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대통령 자문기구 성격을 넘어 독립기구가 된다면 국회 사회적 대화체까지 모두 포함해 독립기구화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며 “그러기 위해 사회적 대화에 대한 헌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게 요긴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독립 사회적 대화기구는 행정부와 국회 자문을 다 함께 수행하는, 역량 있고 권위 있는 제도적 기구로 정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이 공동 주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