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고용’의 새 연결고리, 노란봉투법
김태형 변호사(김태형 법률사무소)
올해 하반기 한국 경제는 눈부신 성과를 기록했다. 코스피 지수는 역사적 고점을 경신했고, 반도체와 전기차 중심의 수출은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정치적 안정과 시장 친화적 정책, 미국의 금리인하, AI·반도체 호황 등이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성과와 달리 일반 국민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기업들이 유례없는 이익을 창출하는 동안 그 혜택은 대다수 국민의 삶에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우리 경제구조의 근본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주가와 수출은 치솟지만 가계의 실질소득은 정체돼 있고, 청년층은 여전히 취업난에 허덕인다.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의 기형적 고용구조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대기업(250명 이상)의 고용 비중은 약 13%에 불과하다. 미국(57.6%), 독일(41.1%)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매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2021년 기준 30대 그룹 상장사의 매출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기업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도 직접고용하는 인력은 극소수라는 뜻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낙수효과’와 같은 것은 이미 유효하지 않다. 대신 수직계열화된 하청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대기업들은 핵심 업무만 직접 수행하고 상당 부분을 중소 협력업체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 결과 성장의 과실은 더욱 소수에게 집중되고, 다수의 일자리 질은 점차 악화하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직접고용을 줄이고 용역·도급·파견 등 간접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통계청의 2024년 8월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845만9천명(38.2%)에 달한다. 3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장에서도 비정규직 비율이 41.2%에 이르며, 이 중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은 30.4%다. 이는 단순히 고용형태의 문제에서 나아가,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해 가계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소비 위축을 불러내 다시 내수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이러한 악순환 구조의 폐해는 명백하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는 대기업 시스템 안에서 일하면서도 법적으로는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불안정한 지위에 있다. 같은 작업장에서도 하청노동자의 산재사망률이 원청노동자보다 최대 8배 높다는 2017년 안전보건공단 연구 결과는,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마저 고용형태에 따라 차별받는 구조가 고착화 됐음을 보여준다.
다행히 이런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해법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다. 이 법의 핵심은 ‘사용자’ 개념을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기업까지 확대한 것이다. 그동안 원청 기업들이 간접고용을 통해 회피해 왔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진정한 권력을 가진 주체가 노동자들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미 독일과 같은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하청사슬에 대한 책임제도를 운영 중인바, 이번 개정은 한국이 늦게나마 이러한 기준에 맞추려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부에서는 경영 부담과 불확실성 증가를 우려한다. 그러나 그동안 간접고용을 통해 기업은 불합리한 이익을 취해 왔다. 아무리 화려한 경제지표가 나온다 해도 기형적 고용구조가 방치되는 한 대다수 국민의 삶은 개선되기 어렵다. 진정한 경제성장은 그 과실이 사회 전체로 확산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기업 또한 이를 통해 다시 성장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시작에 불과하다. ‘성장’과 ‘고용’이 다시 연결되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기업의 성과가 일자리의 안정과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한국 경제는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