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 출범을 향해 ⑩] 경사노위 출범 전야의 삽화들

2025-09-29     박태주
▲ 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할 것인가를 결정하려던 임시대의원대회(2018년 10월17일)가 무산되면서 경사노위 출범은 가시권에 들어온다. 민주노총을 빼더라도 경사노위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분위기로 급변한 것이다.

경사노위를 출범시킨다고 바뀔 것은 별반 없었다. 형식적인 모양새는 갖출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민주노총 배제라는 비용을 치러야 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실질적인 완전체로 수행되던 사회적 대화를 반쪽짜리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간 사회적 대화에서 “국가나 자본은 상대하기 쉬운 한국노총은 포섭하고 민주노총은 실질적으로 배제하는 이른바 ‘배제적 헤게모니 전략을 지속적으로 구사해 왔다”는 과거를 확인하는 역주행이었다(장홍근, 2020, “‘1987 노동체제’에 대한 이해와 대안 모델의 탐색”).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의원대회 유회를 악용한 … 민주노총을 배제하려는 시도나 흐름에 대해 분명히 대응해 나갈 것”(김명환 위원장 편지, “대의원대회 유회에 사과드립니다”, 2018년 10월20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을바람이 귓전을 스쳐가듯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임시대의원대회 이후 민주노총을 빼려는 흐름은 도리어 세를 얻어가고 있었다. 몇 개의 삽화로 정리한다.

문 위원장은 민주노총 포기를 선언하고

2018년 10월19일 이른 아침. 경사노위 맞은편 커피숍 2층에는 늙수그레한 두 남정네만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울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무산된 지 사흘째, 이틀간 잠적하다 나타난 문성현 위원장은 배신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자신이 도왔던 사람들, 믿었던 사람들이 대의원대회 무산을 주도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실명을 거론하며) 그들은 사회적 대화를 집행부 견제 수단으로 써먹는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 인생을 걸고 노동운동을 했지만 실패했다”. 울먹이다 안경을 벗어 눈가를 닦으며 기록을 부탁했다.

“결론을 내릴 때가 왔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부적합한 조직이다. 1%의 가능성도 찾을 수 없다. 더 이상 민주노총 눈치나 보고 가슴 졸여가며 할 일도 없다. 대통령을 만나면 사회적 대화를 포기하시라고 말씀드리겠다. 이는 100% 나의 결론이다.”

토론하거나 설득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고향에 내려가 전화기 꺼두고 좀 쉬시라”고 말하고 나도 사무실에 들어와 휴가를 냈다.

문 대통령은 민주노총 없는 경사노위 출범을 독려하고

며칠 후 10월22일, 문성현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했다. “회의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민주노총이 빠지더라도 경사노위가 출범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문 위원장의 말이다. “민주노총이 불참하더라도 (경사노위는) 가야 한다. 1월에 다시 결정한다는데 올 수 있나? 어렵다고 본다. 온들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나? 또 나가지는 않나?” 문 위원장이 전하는 대통령의 질문에는 민주노총이 변화될 줄 모른다는 극한의 피로감이 배어 있었다.

문성현 위원장이 “사회적 대화 주체들이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말씀드리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예상은 그야말로 독장수셈이었다. 게다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을 보면서 민주노총과 같이해야 하나 고민했다. 전교조는 법대로 해야 한다. 앞으로 민주노총은 만나지 않겠다. 경사노위에 오면 오고 말면 말고. 민주노총 없어도 간다”라는 발언까지 있었다니 상황은 종료된 셈이었다(문 대통령은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를 나흘 앞둔 2019년 1월25일, 양대 노총 지도부와 차담회를 가졌다).

10월29일 퇴근 직전, 직원이 다음날 치 신문을 들고 왔다. “대통령이 문성현 위원장더러 민주노총 빼고 경사노위 출범을 독려했다.” 매일경제에 실린 기사였다. 제목은 “靑, 민노총 빼고 경사노委 출범”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곧바로 부인했다. 기사는 삭제됐다. 경향신문(2018년 10월3일)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민주노총 없는 경사노위가 출범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청와대가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새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연내 공식 출범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연내 공식 출범 검토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문 대통령은 … 민주노총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경사노위를 연내 개문발차하자’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경사노위 출범과 탄력근로제의 의제 채택은 세 번째 삽화에 해당한다. 경사노위 출범이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압박하는 카드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특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사회적 대화의 의제로 올린다는 건 민주노총 내 사회적 대화 반대파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연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노총 복귀에 미치는 영향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청와대·여당 “민주노총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경사노위 출범을 앞두고 청와대와 여당에서 일제히 민주노총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회적 대화에 나서달라는 요구였지만 이미 불참이 결정된 상태에서는 뒷북이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섰다. 국정감사 자리에서였다.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이제 상당한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하는 힘 있는 조직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인 협력 틀을 만들기 위해 힘써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중앙일보, 2018년 11월8일).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무산과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투쟁을 선언한 데 따른 비판이었다. 그간 민주노총을 싸고돌던 분위기와 사뭇 다른 발언이었다. 민주노총은 즉각 반발했다. “노동조합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는 무지하고 오만한 말이다”(민주노총 보도자료, 2018년 11월8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가세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 자리에서였다. “노동계는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대화에 임해 달라. 반대만 하는 것은 책임 있는 경제 주체의 모습이 아니다.”(2018년 11월8일)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노동법 개악 저지와 ILO 핵심협약 비준 및 8대 입법 요구 기자회견”으로 답했다. 11월21일에 적폐청산, 노조할 권리, 사회 대개혁을 내걸고 총파업 총력투쟁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경사노위 출범 하루 전이었다.

양대 노총, 같은 길 다른 길

11월8일에는 양대 노총 위원장끼리 간담회가 있었다. 경사노위 참여와 관련해 각 조직의 입장을 확인하는 한편 탄력근로제 기간확대 저지를 위한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먼저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조건과 상황, 민주노총이 현재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못하는 조건과 상황에 대해 양 조직의 입장을 확인”했다.

이어 “국회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을 막아야 한다는 데 양 노총의 입장과 의지에 차이가 없음을 확인”한다. 탄력근로제 개악과 관련해 민주노총은 11월10일 전국노동자대회, 11월21일 총파업 등 이어지는 투쟁을 중심으로 강력히 저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11월17일 노동자대회와 함께 국회 일방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논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한국노총 보도자료, 2018년 11월9일,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위해 양대노총 공동 대응키로!”). 사회적 대화에 대한 서로 다른 행보와 함께 탄력근로제 대응방식에서도 투쟁과 대화로 갈라졌다. 그렇게 경사노위의 출범일(2018년 11월22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tjpark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