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체험으로 풀어낸 기후위기 ‘927 기후정의행진’
먹거리·게임·체험형 이벤트까지 … “기후정의 없이 민주공화국 불가능”
주말이었던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기후정의’라는 구호로 가득 찼다. 이날 열린 ‘927 기후정의행진’은 집회라기보다 다양한 체험과 참여의 페스티벌 장이었다. 광화문 서십자각 터 인도에는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의 부스가 줄지어 들어섰고, 시민들은 부스를 돌며 기후위기와 연결된 문제를 체감했다.
체험·영화· 먹거리로 만나는 기후행동
행사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단체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이었다. 한살림은 실크스크린 부스를 운영했다. 시민들은 한살림의 ‘옷되살림 운동’ 설명을 들은 뒤 안 쓰는 옷이나 에코백·손수건 등에 원하는 문양의 실크스크린을 할 수 있었다. 한살림은 헌 옷을 모아 나눔 또는 판매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수익은 파키스탄 빈민 지역 학교를 후원하는 데 사용된다.
서울인권영화제는 기후정의행진 요구안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영화를 소개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룬 덴스타드 랭글로 감독의 작품, 캐나다 환경운동가 슬레이터 쥬웰-켐커의 영화, <플랫폼 노동의 습격>으로 유명한 섀넌 월시 감독의 작품 등이 소개됐다.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많은 시민의 관심을 끌었다.
놀이를 접목한 체험도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는 딱지치기를 준비했다. 참여자는 ‘공공성’을 외치며 딱지를 친다. 세 번 기회 안에 딱지를 뒤집으면 굿즈 상품이 제공된다. 지부는 이날 가스공급을 공익서비스로 법적 규정하는 난방비폭탄방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청년참여연대의 보드게임 부스도 흥미로웠다. ‘누가 좀 막아봐!-기후위기 속 모두의집’이라는 제목의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세입자·건설업자·정치인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참여자들은 기후재난을 막기 위해 서로 설득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규칙 안에서 토론을 한다. 청년참여연대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대화와 협력이 없다면 기후재난을 막을 수 없고, 결국 게임에서 승리할 수도 없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고 게임 취지를 설명했다.
먹거리도 눈길을 끌었다. 푸드트럭에서는 비건 재료로 만든 감자튀김을 판매했고, 공공운수노조가 운영한 ‘기후정의커피차’는 텀블러를 지참한 시민에게만 커피를 내줬다. 환경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음식과 연결되면서 참가자들도 친환경 음식문화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코너였다.
“온실가스 감축,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기후정의 걸림돌 치우고 새 길 만들자”
부스 행사장 맞은편 동십자각에서는 본집회가 열렸다. 황인철 공동집행위원장을 비롯해 권혁주 전국농민회총연맹 대표,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 등이 무대에 올라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927기후정의합창단이 ‘함께 부르는 기후정의’를 합창했다.
집회가 끝난 뒤에 3만여명의 참가자들은 세종대로에서 을지로, 우정국로 일대까지 행진했다.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도심을 걸었다.
행사 참가자들은 △기후정의에 입각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전환계획 수립 △탈핵·탈화석연료,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반도체·AI 산업육성 재검토 및 생태계 파괴사업 중단 △모든 생명 존엄과 기본권 보장 △농업·농민의 지속가능성 보장 △방위산업 육성과 무기 수출 중단 6대 요구안을 밝혔다.
황인철 공동집행위원장은 “기후재난이 야기하는 생존 위협과 불평등 심화를 방치한다면 모든 생명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 실현은 불가능하다”며 “기후정의의 모든 걸림돌을 치워버리고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권혁주 전농 사무총장은 “예기치 못한 재해가 반복되다 보니 농민들의 삶과 소득을 위협하고 있다”며 “예측할 수 없는 기후재난에서 노심초사하는 농사가 아니라 기후위기 없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노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윤정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 쿠팡CFS지부장은 “폭염과 한파, 장마와 태풍 속에서도 우리는 멈추지 못하고 일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기후재난의 고통을 노동자와 시민이 홀로 감당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둘 수 없다”며 “이윤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의 안전과 생명, 존엄을 우선하는 사회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박치우 공공운수노조 발전HPS지부 부산지회장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일자리나 한시대의 생계만이 아니며, 모두가 함께 살아갈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세상”이라며 “시민과 노동자, 지역사회, 정부의 민주적 협력으로 공공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면 신속하고 정의롭게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