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포스코이앤씨 ‘신안산선 붕괴사고’ 생존자 “작업거부 보장돼야 제2의 사고 없다”
20대 굴착기 기사 언론 첫 인터뷰
“위험작업에 대한 거부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어야 해요. 만약에 사고 당일 제가 장비 수리를 (끝까지) 거부했는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저는 ‘겁쟁이라서 그 일을 안 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밥그릇도 잃었을 거예요.”
지난 4월11일 발생한 경기 광명 신안산선 지하터널 붕괴사고 이튿날 구조된 20대 굴착기 기사 A씨는 27일 오후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고 당일 오후 신안산선 복선전철 제5-2공구에서 굴착기를 수리하다 지하 30미터 아래로 떨어진 그는 13시간여 뒤에 지상으로 구조됐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인 그를 만나 사고 당시 경위와 이후 치료 과정 등을 들었다. 신안산선 붕괴사고 생존자가 언론사와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붕괴 위험 있는데 ‘장비 빼라’ 지시”
A씨는 3월 초 해당 지하터널 공사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원래 한 달 정도 일하고 다른 현장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4월20일까지 있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조금 더 일하게 됐다고 한다. 근무형태는 24시간 맞교대 방식이었다.
A씨는 붕괴사고 징후를 감지한 ‘최초 목격자’이기도 하다. 사고 전날인 4월10일 밤 10시쯤 ‘낙석’ 소리가 들려서 현장 반장에게 무전기로 보고를 한 뒤 반장을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기둥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A씨 보고 이후 현장에서는 작업자들을 대피시켰다.
A씨는 다음날인 4월11일 오전 고장 난 굴착기 수리를 위해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근무 날도 아니었다. 교대 기사에게 그가 직접 산 부품을 전달하고 나서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교대 기사는 오지 않았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대기하던 A씨는 현장 관리자에게서 “장비를 수리해서 (시동을 걸고) 안전지대로 빼라”는 말을 들었다. 위험하다고 판단해 처음엔 작업을 거부했지만 지시는 계속됐다. A씨는 “현장에서 찍히면 밥그릇을 잃을 수 있어서 결국 장비를 수리하러 갔다”고 말했다. “둘이서 하면 1시간이면 끝났을” 수리를 혼자 하던 그는 물을 마시려고 이동하다 사고를 당했다.
트라우마 상담·치료 안내 못 받아 ‘스스로 찾아’
구조 직후 탈수 증세 등을 보인 A씨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5월 병원을 옮겨 현재는 재활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초기에 그는 사고 충격과 상세불명의 신경통으로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손가락·발가락부터 차츰 움직이기 시작해 6월 중순부터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신체 일부는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몸 곳곳의 통증도 여전하다.
심리적 외상을 회복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사고와 매몰 당시 기억을 연상시키는 악몽에 시달렸다. 잠을 자도 30분마다 깨고, 사흘에 10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할 정도로 불면증이 심했다. 어둠이나 적막도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A씨는 “나약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존감도 떨어지고 대인 기피증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회복하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트라우마 상담·치료 안내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A씨는 “살고 싶어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고 결국 직업트라우마센터와 연결될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마음 속 이야기를 상담 과정에서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하면서 회복할 힘을 되찾았다.
대통령·장관 발언에 “잊혀지지 않아 다행”
사회적 관심도 도움이 됐다. A씨는 사고 이후 매일 ‘포스코이앤씨’ ‘광명’ ‘신안산선’ 등을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한다. A씨는 “일주일 가까이 새로운 기사가 나오지 않아 ‘이렇게 잊혀지는구나’ 싶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포스코이앤씨 산재사고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한 것을 듣게 됐다”며 “부모님보다도 든든했다”고 말했다.
A씨는 이 말을 상담사에게 전했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도 전해졌다. 김 장관은 지난달 6일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A씨가 전한 메시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A씨는 이 방송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고 했다. A씨는 “든든하기도 하고, 잊혀지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들었다”며 “매일 그 영상을 보는데, 그러면 어떤 날은 악몽 없이 잘 자기도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이달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안전한 일터’ 타운홀 미팅 행사 전에 김 장관을 만나 편지를 전달했다. 그는 수기로 편지에 “작업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그에 따른 부당한 대우와 눈치 등 그 어떠한 페널티가 없게 강경하게 대처해야 안전한 일터가 되고 제2의 신안산선 붕괴도 없을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