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교섭’ 1심 판결의 의미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2025-09-24     우지연
▲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으로 ‘사용자’의 범위가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되면서, 최근 선고된 한화오션·현대제철의 원청교섭에 관한 1심 판결{서울행정법원 2025. 7. 25. 선고 2023구합55658, 56231(병합) 판결, 2022구합69230 판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원이 주문한 건 ‘단체교섭권의 온전한 실현’

법원은 “교섭할 기회”라는 표현을 반복한다. 단체교섭권이 의미 있으려면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와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다면적 노무제공관계에서 형식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교섭을 막게 되면 교섭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다. 결국 법원이 주문한 것은 실질을 포착해 권리의 본질에 상응하는 책임의 주체를 찾으라는 것이다. 즉 ‘단체교섭권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영점 조정이다.

법원은 단체교섭권을 중심에 놓고 원리(principle)로서의 기본권 실현이 각종 규칙(rule)에 의해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효율성을 고려한 절차 규정이지, 단체교섭권 자체를 제한하는 규범이라고 볼 수 없”고, “단체교섭의 규범적 효력이 … 실질적 지배력을 지닌 사용자와의 단체교섭 자체를 부정할 근거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각종 하위 법령이나 제도, 정책이 헌법상 기본권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법 개정에 따른 실질적 교섭의 기회를 보장하기도 이전에 하위 규칙(rule) 논의에 골몰하는 것은 판시 취지에 반하는 것이 된다.

‘창구 단일화’ 내세워 교섭권 제한할 수 없어

일각에서는 법원이 원청의 교섭요구사실 미공고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것이 원청 차원의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오해다. 한화오션 판결에서 법원은 교섭 거부와 미공고가 사용자가 아니라는 “동일한 이유”로 이뤄진 “하나의 부작위”가 “교섭 거부의 징표”로서 부당노동행위라고 본 것이지, 창구 단일화 절차 이행을 위한 공고 의무를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같은 날 선고된 현대제철 판결을 보더라도 분명한데,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 노조와 단일화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면서도 원청의 미공고를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했고 법원도 이를 수긍했다. 한화오션 판결을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의 근거로 삼을 수 없는 이유다.

오히려 법원은 “원청 노조와 단일화를 거치지 않고도 원청과 직접 교섭이 가능하다”고 보게 되면 많은 문제가 야기된다는 사용자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했다. “원청이 복수의 하청 노동조합과 개별적으로 교섭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이는 다면적 고용관계를 형성해 경영상 이득을 취하고 있는 원청이 부담할 문제”라고도 판시했다. 무엇보다 “노동 3권은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이고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법률로 정하지 않고 노사 간에 자율적으로 정할 사항으로 남겨둘 수도 있는 것이므로(헌법재판소 2002헌바12 결정 참조)”, 하위 법령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가지고 헌법상 단체교섭권 실현을 위한 제약하는 것은 본말 전도임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법원은 “노동법 영역에서는 형식이 아닌 ‘실질’에 기초해 판단되고, 선례가 집적돼 가면서 사안별 판단 기준과 해석의 틀이 형성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자연스럽고, “초기의 상황에서 일시적인 현장의 혼란은 선례의 집적과 제도적 보완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 있으며, 오히려 일시적인 혼란을 이유로 기본권 실현을 제한하는 해석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 결과를 고착화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개정법이 제대로 실현되기도 전에 일시적 혼란을 이유로 법의 실효성을 제약하는 것, 그렇게 해 위헌적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야말로 동 판결이 가장 경계한 바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판결이 반복적으로 말하듯이 “교섭의 기회를 보장해보자.” 이것이 동 판결에 귀기울여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