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에 대롱대롱

2025-09-22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새로 심은 나무 구불구불 또 앙상한 가지에 꽃처럼, 열매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던 노란색 분홍색 쪽지가 있다. 기억하겠다고, 꽃 피우겠다고, 일하다 죽는 일을 없애겠다고, 사람들이 꼬불꼬불 손 글씨로 적었다. 참담한 죽음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일은 고된 일이었다. 처음엔 눈물을 쏟았고, 속절없이 쏟아지던 비를 맞았고, 콸콸 솟는 땀에 쫄딱 젖어가며 길을 헤매는 일이 100일을 훌쩍 넘겼다. 살아남은 동료들은 먼저 간 동료 이름 새긴 비석을 세웠다. 배롱나무를 심었다. 화력발전소 정문 앞이다. 김용균의 동상 옆이다.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울던 사람들 애써 꾸린 협의체가 현장 조사를 나온 날이다. 안전제일 안내판이 깨끗하게 닦여 있었고, 무재해 깃발이 펄럭거렸다. 발전소 입구엔 대형 화면 방송 차량이 안전을 강조했다. 안전모 쓴 담당자 설명에 따르면 대책은 충실했다. 죽음의 현장 바로 옆에 개선 현황 적은 컬러 그림 안내판이 섰다. 어느 죽음은 많은 걸 바꿨는데, 또 다른 죽음을 막을 만큼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잊지 않기 위한 싸움에 다시 나선다. 배롱나무에 대롱대롱 그 다짐을 새겼다. 노란색 스카프 맨 협의체 위원들이 그 다짐을 사진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