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충현 숨진 발전소, 김용균 이후 ‘위험의 외주화’ 심해졌다
종합진단결과 ‘2차 하청’ 안전관리 사각지대 확인 “재하도급 금지해야”
2018년 고 김용균씨 사망 사고 이후 개선된 발전소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이 원청과 1차 하청을 뺀 2차 하청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6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나홀로 일하다 숨진 고 김충현씨 산재는 고 김용균씨 사망 이후 위험의 외주화가 심화한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지적이다. 안전보건공단은 “고 김충현씨 사망 사고 원인은 원청의 안전관리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근본적으로는 경상정비업무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용균 죽음 뒤 안전관리시스템 개선
‘원청·1차 하청’에만 적용, 2차 하청은 제외
이 같은 조사 결과는 18일 공개된 안전보건공단의 종합진단 보고서에 나와 있다. 공단은 고 김충현씨 사망 사고 뒤 고용노동부 명령에 따라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2차 하청 업체를 안전보건경영·안전·보건 3개 부문으로 나눠 7월 종합진단했다. 한국서부발전(태안발전본부)은 태안화력발전소 경상정비 업무를 한전KPS에 도급하는데, 한전KPS는 이 중 기계 정비를 한국파워오엔엠에, 전기 정비를 삼신에 각각 하도급한다. 고 김충현씨는 한국파워오엔엠 소속의 2차 하청노동자였다.
진단 결과는 위험의 외주화였다. 발전소 노동자 14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 2차 하청업체 노동자 간 안전시스템에 대한 인식 차가 컸다. 2018년 고 김용균씨 사망 이후 서부발전은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대폭 개선했지만 이 시스템은 2차 하청노동자에게 적용되지 못했다. 태안발전본부와 한전KPS 노동자는 20개 점검항목 중 대부분 항목에 대해 4.5점(5점 만점)이상의 응답을 보여 안전대책 인지 정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2차 하청노동자들은 ‘같은 설비를 쓰는 타 업체에 작업 내용이 잘 공유되는지’ ‘설비의 비상정지장치 사용 기준을 알고 있는지’등을 물었을 때 3점 이하로 응답했다. 2차 하청노동자들은 20개 점검항목 모두에서 3.3점보다 낮게 대답해 원청보다 현장 위험을 더 감지하기 어려운 사실이 확인됐다.
발전소 안전관리체계도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다단계 하청구조로 종합적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2차 하청업체는 원·하청 안전근로 협의체나 합동 안전보건점검 같은 안전관리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었다. 또 현장의 실질적인 업무지시와 관리권한은 한전KPS에 있는데, 하청업체가 형식적인 관리책임을 갖고 있어 책임소재도 불분명했다. 공단은 “서부발전과 한전KPS가 안전보건 경영방침이나 안전보건 목표를 현장의 모든 작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위험성평가도 제역할을 못했다. 원·하청 간 위험성평가 기준이 달라 작업현장 위험요인에 대한 판단이 갈렸다. 공단은 “같은 사업장에 하청업체들은 각기 다른 안전보건 경영방침을 따르고 있어 안전보건 경영체계의 일관된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며 “사고 발생시 근본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2차 하청업체들은 사실상 인력파견업체로 독립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할 역량이 없다고 확인했다. 공단은 “하청업체 위험성평가도 형식적 절차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며 “역무 범위는 확대되고 있지만 인원은 줄고 있고, 안전감시 전담인력도 배치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단계 하청구조 없애는 것 우선 검토해야”
공단은 원·하청 안전경영 시스템을 진단한 결과 경상정비업무의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것을 근본적 대책으로 꼽았다. “다단계 하청구조가 경영상·기술상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청구조를 없애는 것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원인과 관련해서도 서부발전과 한전KPS의 안전관리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공단은 “(고 김충현씨 사고가 발생한) 정비동과 내부의 기계를 한전KPS가 서부발전에게 임차해 하청업체에 사용하게 함으로써 정비동 안에서 업무의 주체와 장비 소유의 불일치가 발생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구조가 됐다”고 확인했다. 한국서부발전은 2차 협력업체 작업자에 대한 감독이 미흡했고, 한전KPS는 고인이 숨지기 전까지 했던 기계가공 작업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족한 점이 사고 요인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
현장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도급사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공단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하청업체 전체를 포함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안전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안전수칙 준수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며 “하청업체 수행 작업에 대한 위험성평가 실시 등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는 도급사의 실질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공단의 종합진단 결과는 이날 오후 충남 태안군 태안발전본부에서 열린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 4차 전원회의에서 공개됐다. 협의체는 한국서부발전의 현황 보고와 안전보건공단의 사고조사 결과를 청취한 뒤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가 끝나고는 고 김충현씨가 숨진 한전KPS 정비동과 고 김용균씨 사고 현장을 연이어 찾았다.
김선수 협의체 위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지난달 선고된 한전KPS 불법파견 소송 결과 의미를 환기했다. 소송에 불복한 한전KPS가 판결을 이행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태안화력 하청노동자가 한전KPS를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해 전부승소 판결을 선고받았다”며 “한전KPS는 항소를 제기해 법적 다툼을 계속하며 하청노동자를 계속 안전에 취약한 상태에서 위험작업에 종사하도록 하고 있다. 항소를 취하하고 판결을 이행하는 것은 공기업인 한전KPS가 산재 사망률을 낮추고자 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의지를 이행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KPS 관계자는 이날 전원회의에서 소송을 이어가겠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협의체 관계자는 “한전KPS가 대법원까지 소송을 가겠다고 말했다”며 “향후 나올 협의체 권고안에 대해서도 소송과 무관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전했다. 소송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고 김충현씨 사망 사고 현장에서도 긴장감은 이어졌다. 협의체는 작업중지 상태인 정비동을 방문해 고인이 작업하던 범용선반 설비를 확인하던 중 한전KPS 관계자에게 사고 이후 작업 여부를 물었다. 이에 대해 한전KPS 관계자는 “전국의 모든 사업장에서 해당 작업은 중지됐고, 앞으로 작업을 (발전소 밖 외부업체에) 외주화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고인 역시 위험의 외주화로 숨졌는데 또 다른 외주화는 올바른 안전대책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출범한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는 이날까지 4차례 전체회의를 열고 고인 사고 후속 조치 등을 논의하고 있다. 협의체에는 국무조정실·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관계자와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위원, 전문가 등이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