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작업중지권 필요
지난 15일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합동으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예방지원, 구조개선, 제재를 통해 △안전 사각지대 예방 지원 △안전 주체로서 노사의 역할·책무 확립 △노동안전 확산을 위한 인프라 확대 △안전예방을 촉진하는 제재수단 도입 방안을 제시했다. 담당부처는 노동부·중기부·산업부·국토부·과기부·행안부·인혁처·기재부·공정위·금융위·복지부·법무부·농식품부·경찰청 등 사안별 담당부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8개 부처 12개 법률의 입법과제를 제시한 상황이다.
추진 과제 중 산재예방 주체로서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해 ‘피할 권리 : 작업중지권 확대 및 실질적 보장’을 제시했다. ‘노동자가 직접 사업주에게 적극적으로 작업중지 또는 시정조치 요구 권리 신설, 노동자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 완화(산재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유해·위험 발생 농후시 산재발생의 급박한 위험의 우려가 있는 경우), 부당해고·징계 등 정당한 작업중지 행사시 불리한 처우를 받은 경우 형사처벌 신설 및 법적 구제절차 명확화’ 등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의 필요성까지 강조했다.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당시 사업주의 작업중지의무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었으나 1995년 개정 때 “근로자는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때에는 지체 없이 이를 직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직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1996년 “사업주는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때에는 2항의 규정에 의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해 이를 이유로 해고 기타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신설되면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에 대한 근거가 마련됐다.
2019년 전부 개정 때 2조1호, 26조2항·3항을 52조로 규정했다. 그러나 노동자 작업중지권은 ‘급박한 위험’, ‘작업재개를 위한 적절한 조치’ 등 적용과 해석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노동자의 실질적인 권리 행사가 어렵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사실상 사업주의 일방적 판단과 주장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작업 중지를 한 노동자에 대한 징계 등 불이익 처우,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했다. 2016년 노동자가 산업단지 내 인근 공장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노출 사고를 이유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자 정직 처분을 한 사건이 있었다. 대법원(2023. 11. 9. 선고 2018다 288662 판결)은 A회사 인근 공장에서 화학물질 티오비스 약 300리터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A회사에 재직 중인 노동자로서 B노동조합 지회장인 R이 이 소식을 들은 다음, 작업장을 이탈하면서 당시 작업 중이던 위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에게도 대피하라고 해 조합원들이 작업장을 이탈했고, 이에 A회사가 R에 대한 정직처분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의 도입 경위와 입법 취지 및 관련 규정’ 등에 비춰 사안의 중대성을 살폈다는 점에서 이번 법 개정은 문구 하나하나 세세하고 꼼꼼한 디테일이 필요한 작업이다.
오랫동안 노동계는 작업중지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안전보건 조치 미비, 유해·위험요인 노출 우려, 폭염·폭우 등 악천후, 고객의 폭언·폭행 등 건강장해 우려, 위법·부당한 업무지시에 대한 거부권(거절권) 등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노동조합이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작업중지권 확보, 작업중지 기간 동안 임금보전, 하청노동자 손실보전 방안, 작업재개시 안전보건 조치의 확인 방식이나 기준 제시 등 작업중지권의 입법 취지를 고려한 세부 사항이 필요하다고 요구해 왔다. 현재 정부가 제시한 ‘노동자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 완화 및 불리한 처우 금지’ 등 추진 방향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개정을 통해 작업중지권이 일시적인 위험의 회피가 아니라 위험을 해결하는 상황까지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작업중지권 행사 과정, 이후에도 노동자에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수준까지 끌어올려 실질적인 보장이 가능하도록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노동계의 요구안이 개정안으로 적극 반영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