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을 위한 공공기관 ③] 노정교섭 향한 공공기관 정책 개혁, 공공성 키울 수 있을까
국정과제·보수위 신설로 노정교섭 방향 터 … “공공성·노동권 키우는 운영 목표 법률에 명시해야”
새 정부는 기재부 분리 등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을 추진하며 공공기관 정책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국민에게 필요한 필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 본래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국민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 개혁은 어떻게 가능할까. <매일노동뉴스>가 연속 기사를 통해 공공기관 정책 개선 방향을 탐색한다. <편집자>
정부가 지난 16일 123대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195쪽 분량의 국정과제에는 공공부문 노동자 보호 및 권익 향상 대책이 포함돼 주목받는다. 이는 그동안 정부 일방적인 지침으로 실질적인 교섭권을 보장받지 못했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국정과제-공운위 개편-기재부 분리’
공공기관 정책 전환 방향 세워져
이번 국정과제는 공공부문 노동자 교섭권 강화를 위한 내용이 담겼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산업별·기업별 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관련 법에 명시할 계획이다. 특히 공공부문은 초기업 단위 자율교섭 체계를 구축하고, 집단교섭 모델을 마련해 노동자들 목소리가 공공 정책에 반영되도록 한다. 또 공무직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논의할 공무직위원회 법제화도 추진한다.
국정과제는 그동안 기획재정부가 주도한 공공기관 운영·통제 방식에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노동계는 그간 기재부가 관리하는 총인건비제와 경영평가 등으로 공공부문에 실질적인 교섭이 어려웠다고 주장해 왔다.
이 같은 요구에 따라 정부는 국정과제와 함께 기재부 분리·공공기관운영위원회 개편을 담은 조직개편안을 이달 초 발표했다. 공공기관 정책 전환의 밑그림을 담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도 지난 7월 발의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공운위 안에 보수위원회를 설치해 총인건비제 인상률을 심의·의결하도록 했다. 기재부 장관이 독점하던 공운위 위원 추천 권한을 민간 위원장에게도 부여했다. 민간위원수를 확대해 기존보다 구성이 다양화할 수 있다는 기대다. 공운위를 통해 공공기관 경영 핵심을 결정해 온 기재부 권한에 제동이 걸린다.
국정과제와 정부조직개편,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이 나란히 시행된다면 공공기관 정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일련의 논의들이 노동계가 요구해 온 노정교섭이라는 방향에 부합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정책이 노정교섭의 전 단계 혹은 초기단계라거나 사회적 대화에 그친다는 평가도 있지만 공통된 의견은 공공기관 운영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는 첫걸음이라는 점이다. 다만 정태호 의원안에는 공운위나 보수위에 노조 참여가 명시되지 않아 이에 대한 우려는 나온다. 공운위 개편이 공공부문 초기업교섭·노정교섭을 향한다면 노조 참여나 노조 추천이 보장돼야 한다. 보수위가 결정할 의제도 총인건비 인상률로 한정돼 있어 기재부가 만드는 다양한 경영 지침까지 의제를 확대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노정교섭으로 규제 중심 기재부 견제
정부는 초기업교섭 활성화 정책 배경을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라고 밝혀왔다. 기업 단위 교섭 방식이 노동자 간 임금격차를 심화시키고 노조가 없는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에 근거한 주장이다. 노동계도 정부의 공공기관 통제 정책이 기관·고용형태 간 격차를 확대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해 왔다. 총인건비제가 그렇다. 기재부는 매년 예산지침에 근거해 총인건비 인상률을 정하는데, 기관 유형과 무관하게 정률로 적용된다. 한번 생겨난 임금 격차는 심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임금 격차가 지속할 경우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한 기관이나 비정규직이 수행하는 공공서비스는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는 “이번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에 보수위가 신설됐는데, 중요한 고민 지점은 (보수위가) 공공기관 간 임금 격차 해소 원칙”이라며 “기관 간 임금격차 해소가 보수위 결정의 원칙이 되도록, 기관·산업·부문에 따라 임금 인상률에 차등을 두도록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인건비는 공공기관 설립 목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하태욱 건강일자리연구소 대표는 “태풍·홍수 등으로 비상대기가 필요한데 총인건비 규정상 재난 상황이 돼야만 초과근로가 가능해 사전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기관도 있다”며 “기타공공기관인 한전원자력연료는 시간 외 근무 한도로 해외에 공공서비스를 수출하는 데도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정책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노정교섭 요구로 모아지는 건 이 때문이다. 기재부는 총인건비제·경영평가나 각종 지침을 통해 일방적으로 공공기관 운영을 관리해 왔다. 우선적인 가치는 재정건전성·재무효율성으로 국가 지출을 확대해 공공서비스를 확대하기보단 축소하고 조정하는 데 집중해 왔다. 공공부문은 기재부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셈이다. 노조는 노정교섭을 통해 인력확충과 공공서비스 확대 등을 구체화하며 정부의 일방적인 통제 정책을 견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공공기관의 기능을 확대하고 공공성을 키우도록 노정교섭을 통해 제도를 개선하고, 노동자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장은 “그간 기재부는 공운위를 완전히 통제해 왔다”며 “공운위 운영을 기재부에서 분리하거나 구조를 분리해 기재부가 단독으로 의사결정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을 갖춘 거버넌스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후 노정교섭이 구체화한다면 임금 인상률은 노정교섭으로 정하고, 근무제도와 같은 비임금 사안의 의제들을 업종·부처별 교섭에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공공기관 때리기 반복 지양해야”
공운위 개편 등 구체적인 제도 개선을 넘어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주문도 나온다. 막대한 적자로 ‘방만경영’을 지적받아 온 공공기관 정책을 통제·규제 중심에서 공공성 확대로 무게를 옮기자는 주장이다.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은 “공공기관 재무 건전성은 중요하지만, 기관의 부채는 단순히 규모로만 이야기할 수 없다”며 “경영실패에 따른 악성부채인지 공공서비스 수행을 위한 ‘착한 부채’인지 부채 성격을 구분해 관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방만하게 운영됐다고 할 만한 지표는 사실 아무것도 없다. 기재부가 재무중심 관리기관으로 운영되다 보니 공공기관 운영의 모든 잣대가 효율 중심이었던 부분이 변화해야 한다”며 “이를테면 공공기관운영법에 공공기관 본연의 기능과 공공성을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운영 목표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실장도 “국가 예산을 쓰는 공공기관에 대한 통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통제가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도 문제”라며 “공공성 안에 노동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정교섭이나 당사자와의 소통이나 대화를 통해 정책과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방향으로 바뀌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기관은 정부와 국민 필요에 따라 만든 기관인데 통제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정부에 따라 ‘때리기’가 반복돼 온 점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기관 정책 변화를 앞둔 지금 균형 감각을 주문하는 의견도 나왔다.
라영재 건국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는 “정부마다 정책적 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재부가 아주 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면 이를 민주화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다만 공공성과 공익성 못지않게 효율성도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안전 인력을 늘리는 등의 공익성 추구는 필요하지만 공공기관이 모든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지점을 고려해 효율성과 공공성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