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을 없애는 법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돈 없으면 쿠팡이라도 뛰어라’는 말이 종종 떠돌곤 한다. 이 말에는 몇 가지 함의가 있다. 첫째로는 요즘 같은 취업난에 그나마 쿠팡에서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수월하다는 것이고, 둘째로 단기 아르바이트 치고는 액수가 제법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그나마 들어가기 수월하고 액수도 높은데도) 돈 없고 정 급할 때나 찾아야 할 수단일 정도로 쿠팡의 업무강도가 높다는 것이다.
그 높은 업무강도는 산업재해를 낳는다. 그간 쿠팡노동자들의 야간노동과 장시간노동으로 인한 과로사가 수차례 언론보도를 탔다. 쿠팡은 폭염 기록을 갱신한 올해 여름에는 업무공간 온도계를 에어컨 아래에 설치해 폭염시 2시간마다 휴게시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규정을 회피했다. 폭염 속에서 일하던 어느 노동자는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
사용자는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신체·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보호의무(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대법원 2000. 5. 16. 선고 99다47129 판결). 산업안전보건법 등에서도 사용자가 노동환경을 안전하게 조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꼭 노동자를 위한 것만도 아니다. 자본주의 모델에서 자본 창출의 근간이 노동이라면, 노동이 계속 무사히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사용자에게도 이익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축적된 지혜다.
그럼에도 쿠팡은 아랑곳하지 않고 에어컨 아래에 온도계를 설치했다. 법은 멀고, 노동청의 권한과 인력은 제한돼 있다. 노동자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거나, 지쳐서 더 이상 일하지 못한다. ‘돈 없어서 쿠팡을 뛰어야’ 하는 마당에,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거나, 지친 노동자들이 쿠팡 같은 대기업과 싸우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은 손을 잡고 노동조합을 꾸렸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노동강도를 낮추고, 적절한 냉난방시설을 설치하고, 필요한 휴게시간을 부여해달라 외쳤다. 쿠팡은 조합원들의 이름을 ‘명백한 범죄행위에 연루된 사람들’과 나란히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조합원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거절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1일 노조간부 2명에 대한 쿠팡의 무기계약직 전환이 부당해고라고 판단하고, 이러한 해고가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불법적 행위, 즉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원고(노동자)가 기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노동활동을 개시하고 나서 갑자기 점수가 급락했던 점이나, 승인하에 조퇴를 사용했는데도 사용자쪽이 이를 감점 사유로 삼은 점(이 조퇴는 노조활동을 위한 근로시간면제제도가 활용되고 있지 않은 쿠팡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 등이 부당해고 판단의 주요한 근거가 됐다. 여기에 더해 재판부는 평가기준의 세부항목에 노조활동 자체에 불이익을 주는 항목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항목들을 활용하기에 따라 조합원들만을 내쫓는 부당노동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개별 사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때 놓치기 쉬운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꿰뚫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부당해고가 불법이라는 판단이 나왔으니, 이 방식으로 노조를 파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노조가입 의지를 꺾고, 노조의 필요성을 희석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안전한 노동환경과 적정한 노동조건을 제공하고 사람다운 대우를 해서 노조의 필요성을 없애버리는 것이다(놀랍게도 노동자들도 대개 인생을 무탈히 살고 싶지, 삶을 투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럴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 노조와 공존해야 한다. 노조의 요구를 듣고, 교섭하고, 합의한 단체협약에 서명하고, 서명한 단체협약을 지켜야 한다.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서 부당한 해고를 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법의 문언이고, 우리 법원의 해석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