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장 성적표, 뭐가 중요하고 어떻게 바꿔야 하나
박건영 메타보이스㈜ 대표
변화의 얼굴, 초선 단체장
초선 단체장은 ‘변화’라는 깃발을 들고 등장한다. 오래된 행정을 바꾸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약속으로 주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특히 청년 일자리, 공공 인프라, 교통 문제, 생활문화 기반시설 등 주민 생활밀착형 정책에서 초선 단체장의 열정은 분명하게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나 초선의 가장 큰 약점은 경험 부족이다. 중앙정부, 의회, 지역사회와의 협력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추진력부터 너무 앞서다 보면 정책이 지연되거나 성과가 흐지부지될 때가 많다. 노동계 입장에서도 초선 단체장 시기의 불안정성은 곧 노동정책의 단기성과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생활임금 조례, 지역 노동복지센터 설립 등과 같은 의제들이 초반에는 힘차게 논의되다가도 실제 실행까지 가는 경우는 경험적으로 볼 때 흔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즉, 초선 단체장의 성적표는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주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었는가’에 달려 있다. 이는 곧 청년이 느끼는 첫 월급, 노동자가 경험하는 고용안정성, 돌봄노동자가 체감하는 처우개선 같은 구체적 변화로 확인될 수 있다.
안정의 기로, 재선 단체장
재선 단체장은 단체장으로서의 본격적인 성적표를 받는 시기다. 초선 때 시작한 사업이 실제 성과를 내고 제도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첫 임기에는 준비였으니, 이제는 성과를 보이라”라는 기대를 갖는다.
노동계 시각에서 보면, 재선 단체장은 노동·고용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초선 때 실험적으로 추진한 노동정책이 단순 일회성 사업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는지가 핵심적인 시험대다. 예컨대 생활임금제를 확대 적용하거나,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직을 위한 안전망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한층 강화하는 정책 같은 경우 재선 단체장에게서 성과가 드러나는 대표 사례다.
그러나 동시에 주민들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노동정책에서도 “사업은 많은데 일자리는 여전히 불안하다” “복지 예산은 늘었지만 정작 현장노동자의 처우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쉽다. 즉, 재선 단체장의 성적표는 ‘정책 연속성 확보 및 제도화 능력’에 좌우된다.
경륜과 권력 피로, 3선 단체장
3선 단체장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무기로 한다. 대규모 산업단지 유치, 교통망 확충, 문화·관광 규모화 전략처럼 장기적이고 굵직한 사업을 밀어붙이는 데 강점을 가진다. 지역 노사정협의체를 제도화하거나, 산재예방을 위한 지자체 차원의 안전감독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도 3선 단체장의 풍부하고도 장기적인 기존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권력에 대한 피로감도 커진다. 장기 집권은 혁신 의지를 약화시키고, 기존의 고착된 이해관계에 얽매이기 쉽다. 노동계에서도 “3선 단체장이 혁신적인 변화를 막는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예컨대, 산재 다발 사업장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요구해도 “기업 활동 위축”을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일 수가 있다. 주민들이 원하는 변화는 원래 기대보다 더디고, 일자리의 질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으며, 결국 “오래는 했지만 뭐가 달라졌나”라는 회의론이 커진다. 3선 단체장이 성과를 인정받으려면, 과거 업적을 강조하기보다는 현재 노동·생활 현안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해결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단체장의 성과를 어떤 잣대로 봐야 할까.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이 가능할 것이다.
성과를 가르는 세 가지 기준
첫째, 정책 성과다.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보호, 산재 예방, 노동복지 확충 등은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성과다. 단체장의 업적은 대부분 지자체에서 집중하는 홍보성 활동보다는 노동자가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로 평가된다.
둘째, 위기 대응 능력이다. 예컨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확인했듯 지방정부가 긴급 재난지원금과 고용안정 대책 등을 얼마나 신속히 시행했는지 여부가 주민들의 지지에 직결됐다. 경기 침체, 기업 구조조정, 고용위기 같은 상황에서 노동자 보호에 앞장서는 단체장은 주민들에게 강한 신뢰를 얻는다.
셋째, 주민과의 신뢰다. 노동계와의 대화창구를 열어 두고, 노사정협의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단체장은 “소통하는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반대로, 자랑하기 좋은 기업 유치 성과 같은 것만 내세우고 노동 현안을 외면하는 단체장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진짜 성적표는 ‘노동자의 삶’이 기준이어야
대한민국 지방자치 30년의 경험은 분명하다. 단체장이 초선인지, 재선인지, 3선인지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주민의 눈은 ‘몇 선 단체장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우리 삶을 바꿨는가’에 있다. 그리고 우리 삶의 가장 큰 부분은 바로 노동이다.
일자리 안정, 안전한 작업환경, 정당한 대우, 복지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단체장이 아무리 화려한 업적을 자랑해도 주민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반대로 작은 변화라도 노동 현장에서 체감된다면, 주민들은 그 단체장을 오래 기억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다. 지방 행정조직 수장으로서 지역의 노동 인프라와 안전망 구축을 책임지는 실질적 운영자다. 예컨대, 산업단지 노동자들을 위한 공공 직업훈련,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 캠페인, 정규직 전환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 등은 단체장의 정책 방향에 따라 실현 여부가 결정된다고 봐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또한 지역 노사관계의 중재자 역할도 중대하다. 예기치 않은 기업 구조조정·감원 위기가 닥쳤을 때, 지방 행정조직의 수장이 노사정협의 기구를 통해서 대안을 모색하고 생존권을 지키려는 노력은 확실히 노사관계 불안정 완화에 기여한다.
특히 요즘처럼 플랫폼·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가 늘어나는 시대에 지방정부의 대응 속도는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지방정부가 먼저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노동자는 “이곳이 내 삶을 지켜주는 곳”이라는 신뢰를 갖게 된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노동 친화적 행정모델은 초선이든, 재선이든, 3선이든 단체장을 평가하는 진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지방정부의 진짜 성적표는 주민의 삶, 그중에서도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로 채워져야 한다. 이것이 지방자치 30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분명한 교훈이다.
지방자치 30년, 이제는 경력보다 역량, 당선 횟수보다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실질적 성과가 매우 중요하다.
박건영 메타보이스㈜ 대표 (fengels@metavoic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