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알고리즘 규제 없이 배달 안전 없다

정부 라이더 실태조사 강조, 시기는 미정 … “프로모션 채우려다 사고위험 겪어”

2025-09-05     이재 기자
▲ 이재 기자

정부가 올해 안에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안을 제출하고 조만간 라이더 산업안전 실태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실태조사 시점은 미정이다.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 추진, AI 규제는 “글쎄”

박윤경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기준과장은 5일 오전 서울 국회 본청에서 배달노동자 안전대책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하반기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안을 제출한다”며 “법률 제정과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적극 추진하고 현장 의견이 법안 제정 과정에 논의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알고리즘 규제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토론회에 함께 참여한 최정원 국토교통부 생활물류정책팀장은 “배달플랫폼 인증제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고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대목이 있어 개선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이날 토론회는 배달노동자의 은닉된 산재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은 “올해 상반기에만 배달노동자 16명이 사망했지만 중대재해는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며 “도로 위를 달리는 플랫폼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도로 사정을 플랫폼기업이 통제할 수 없고 재해예방을 위해 쓸 수단도 마땅찮다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4조와 5조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기 떄문”이라고 설명했다.

배민 산재 신청 1천423건, 압도적 1위

집계된 중대재해가 없을 사망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산재도 차고 넘친다. 국회를 통해 드러난 지난해 8월 기준 산재현황을 보면 우아한청년들의 산재가 신청 1천423건, 승인 1천368건으로 가장 많다. 쿠팡이츠서비스의 산재도 신청 446건, 승인 421건으로 4번째다. 산재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건설업에서 대우건설이 두 번째로 산재가 많았지만 508건 신청, 474건 승인으로 우아한청년들과 격차가 컸다. 게다가 양상도 달랐다. 오 실장은 “산재가 많은 건설업에서 질병산재가 상승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배달노동쪽은 사고산재가 압도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우아한청년들 사고산재는 신청 1천416건이고 질병은 신청 7건에 불과했다. 이와 달리 대우건설은 사고산재 신청 371건, 질병 137건으로 대조적이다. 사고도 많고 사망도 많은데 중대재해만 ’기록되지 않는‘ 셈이다.

배달노동자 산재에서 주목할 지점은 알고리즘과 앱의 영향이다. 지난해 우아한청년들·배달플랫폼노조 합동 위험성평가에서 배달 인센티브 충족을 위한 사고가 제시됐다. 같은 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일환경건강연구소, 라이더유니온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위험이 확인됐다. 가장 높은 위험도는 비·눈·낙엽 등으로 미끄러운 도로가 중대성 3.49, 가능성 3.52, 위험성 12.9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운전 중 앱을 터치·조작하느라 위험함‘(중대성 3.21, 가능성 3.4, 위험성 11.57) ’운전 중 배달앱 화면을 확인하느라 전방주시 못함‘(3.17, 3.31, 11.26) ’위험한 상황(폭우·폭설 등)에 운전하게끔 유인하는 프로모션‘(3.13, 3.25, 10.96)이다. 이날 제시된 실제 사례를 보면 인공지능(AI)이 산출한 시간 안에 배달물을 수령하거나 배달하지 못하면 스마트폰 앱을 통해 배달 진행 여부를 확인하는 메시지가 수신된다. 이를 터치해 답변하지 않으면 배달을 진행할 수 없거나 불이익을 받는다. 이동 중 이런 사유로 앱을 조작하다가 발생하는 사고의 위험이 앞선 조사에서 드러난 것이다. 라이더유니온지부가 지난달 21~25일 라이더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응답자 91.2%가 “배달료 할증 프로모션이 과속을 유발한다”고 응답했다. 프로모션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겪었다는 응답도 66.4%로 나타났다.

“배달 중 맞나요?” 앱 질문 답하다 ‘아찔’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프로모션도 문제다. 이날 토론회 청중으로 참여한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조합원들은 플랫폼사의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사고 위험을 높인다고 성토했다. 이를테면 2~3시간 내에 배달노동자 5명이 배달 84건을 처리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기본운임이 계속 낮춰지는 가운데 이런 프로모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밥벌이를 하기 어렵다는 게 배달노동자의 설명이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사용자쪽이 기본운임을 지속적으로 낮추고 거리에 따른 할증을 삭감한 상황에서 사용자쪽 필요에 따라 프로모션을 실행하고, 이를 달성해야만 생계비를 벌 수 있으므로 과속과 과로를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초점은 알고리즘 규제로 모인다. 우리나라는 알고리즘 또는 관련 데이터 공개에 인색하다. 그러나 알고리즘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사고를 줄일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의 대상은 재해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요인”이라며 “라이더 개인의 불안전 행동이나 차량 자체의 기계적 위험요인을 넘어서 플랫폼 알고리즘, 기상여건, 교통체계, 도로관리 등이 모두 위험성평가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 노무제공자 포괄

특수고용직이니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은 현장에서 배척됐다. 조현주 노동자권리연구소 연구위원은 “산업안전보건법은 2019년 1월 전부개정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법조문에는 배달종사자 안전조치도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가 알고리즘을 비껴갈 이유는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플랫폼사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강동진 쿠팡이츠서비스 상무와 박승선 우아한형제 라이더정책실장 모두 “라이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동의한다”며 자사의 기존 정책을 설명했다. 그러나 유상운송보험을 선제적으로 시행해 달라는 현장노동자의 요구에 대해서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안전 등 논의 실질화할 포럼 제안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배달노동자 산업안전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할 포럼을 정부 훈령을 만들어 구성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일본 음식배달협회 사례와 우리나라 환경부 화학안전정책포럼 사례를 들어 공론장을 토대로 한 음식배달서비스 이해당사자 안전보건포럼 구성을 제안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일본 음식배달협회는 교통안전 가이드라인을 2021년에, 음식 배달원의 취어봔경정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2022년에 제정했다. 강제성은 없지만 이해당사자가 망라한 논의를 거쳤다. 강 교수는 “업계의 도덕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화학안전정책포럼은 이해당사자 참열ㄹ 통한 소통·공론장으로 202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강 교수는 “지난 3년간 화학안전정책 정당성과 신뢰성을 노피는 데 이해당사자 참여 공론장으로서의 위상이 확립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2023년 화학물질 안전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중장기계획 전환전략 2033을 마련해 환경부 사업 및 업무계획에 반영될 수 이도록 했고, 포럼이 다루는 화학 3법의 법정위원회를 사실상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공무원과 기업, 전문가가 원포인트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을 그만두고 숙의를 통해 참여하고 결과를 내면 입법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