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에 중앙대화] 양경수 위원장 “국회 사회적 대화로 민주노총 효능감 보여줘야”
중앙위 격론 끝에 54.3% 찬성 가결, 다음달 대화체 출범 … ‘첨단신산업 인력양성·비정형노동자 사회보호’ 의제
민주노총(위원장 양경수)이 국회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다. 정부주도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기구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사용자단체, 그리고 정치권이 참여하는 중앙 사회적 대화에 26년 만에 참여하는 셈이다.
산업안전 관련 의제도 검토 중
민주노총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에서 올해 첫 중앙위원회를 열고 국회 사회적 대화 참여의 건을 표결 끝에 54.3% 찬성으로 가결했다. 찬반 양쪽 각각 7명씩 14명의 치열한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민주노총이 중앙위 의결로 참여를 확정하면서 국회 사회적 대화는 다음달 출범식 등을 진행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이 참여할 국회 사회적 대화는 지난해 8월 이후 실무협의를 통해 이미 의제를 추렸다. 첨단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력양성 방안 모색과 특수고용·플랫폼노동·프리랜서 사회보험 및 사회안전망이다. 각각 재계와 노동계 요구가 반영됐다. 초기 노사 단체는 대립적인 의제를 제시해 긴장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단체 내부 논의와 국회의장실의 적극적 중재 등으로 의제를 일부 정돈한 상태다. 산업안전 강화 관련 의제도 세 번째 안건으로 심도 있게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현안 관련 사회적 대화도 추진할 수 있는 틀을 고심 중이다.
국회 사회적 대화 운용 방식은 일방의 의사진행을 배척하는 형태다. 협의를 통한 합의에 비중을 뒀다는 설명이다. 표결 방식의 밀어붙이기는 지양할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어느 일방이 반대하면 합의에 이를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윤 정부 개점휴업 경사노위 ‘대타’로 추진
국회 사회적 대화 구성은 지난해 우원식 국회의장이 취임 일성으로 강조하면서 논의를 시작했다. 우 의장이 직접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해 한국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가 참여를 독려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활동을 한 우 의장의 ‘개인기’에 대한 신뢰도 국회 사회적 대화 출범에 바탕이 됐다.
국회 사회적 대화는 윤석열 정부 초기 들어 개점휴업 상태였던 경사노위에 대항하는 의미를 가졌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 정부 간 반목이 지속하고 노사 현안에 대통령직속 기구인 경사노위가 역할을 못하면서 대화채널을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현재는 정권 교체로 노사·노정 관계가 새 국면을 맞은 만큼 의미가 다소 희석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그렇다고 역할이 작다고 보긴 어려울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안 곳곳에서 사회적 대화를 토대로 한 거버넌스 구축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 채널도 국회 사회적 대화와 경사노위 등 다양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쟁점은 국회 사회적 대화가 경사노위와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느냐다. 집행력을 가진 정부가 빠진 한계도 지적된다.
“위원장 진심 뭐냐” 치열한 중집 토론 1년 가까이
국회 사회적 대화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와 우려와는 무관하게 민주노총은 오래된 사회적 대화 관련 논란에서 일부 변화를 겪게 됐다.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 탈퇴 이후 처음 중앙 차원의 노사정 대화 기구에 들어가게 됐다. 이보다 앞서 2005년에도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를 놓고 한 차례 논란이 있었지만 소요사태까지 발생하며 심각한 갈등을 드러냈다. 이어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 경사노위 참여와 관련해 격한 논쟁을 벌인 끝에 불참하기로 했고, 2020년 코로나19 관련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도 내홍 끝에 불참했다.
이번 참여를 두고도 민주노총은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 찬반토론에 앞서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양 위원장의 진의를 묻기도 했다. 엄 위원장은 “내부 갈등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이유를 듣고 싶다”며 “1년 가까이 중집에서 밤늦은 시각까지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데 무엇을 얻겠다고 단결이 아닌 혼란을 초래하면서 참여하는지 진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양 위원장은 “그간 민주노총은 투쟁하면서 제도와 정부 정책에 많은 개입과 역할을 해 왔고 윤석열 내란을 막는 데서 민주노총의 효능감을 조합원과 시민에게 알렸다”며 “이제는 교섭과 국회 사회적 대화를 통해 입법과 정부정책으로 뭔가를 만드는 데 민주노총이 효능감을 보여주는 것 또한 전략과 전술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중앙위에 의사를 묻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찬성쪽 “현장 투쟁 지원” 반대쪽 “민주당 정권 불신”
이날 토론에서 국회 사회적 대화 찬성쪽 의견은 대체로 현장 투쟁을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묶였다. 찬성 의견을 낸 중앙위원 ㄱ씨는 “2023년 12월 인공지능 때문에 콜센터에서 해고됐고 이후 은행들에서 해고가 발생해 정치인을 비굴하게 따라다니며 의제를 고민해 달라고 했다”며 “지금 투쟁을 열심히 하면서 민주당 찾아가 바짓가랑이 붙잡고 조합원 해고를 막아 달라 울고불고 각개전투를 하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금속노조 조합원인 중앙위원 ㄴ씨는 “지역에서 동지들과 함께하다가 결국 회사와 대화를 위해서는 국회를 가야 했고, 한국와이퍼 투쟁도 지부장이 47일을 국회 앞에서 단식해서 겨우 대화테이블 하나를 열었다”며 “앞서 하이닉스 관련 투쟁에서는 민주당도 아니고 국민의힘을 따라 다니며 모욕을 당했는데, 한국옵티칼하이테크도 마찬가지다. 투쟁하는 동지가 더 이상 국회의원 바짓가랑이 쫒아 다녀 창구 하나 열기 위해 안달복달하지 않게 민주노총이 우산이 돼라”고 주문했다.
반대쪽은 성급히 국회 사회적 대화에 임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조합원인 중앙위원 ㄷ씨는 “우리의 준비와 강력한 투쟁을 담보하지 않은 채 사회적 대화에 임했을 때 자본가와 그 대변인인 정치권에 이용당했다”며 “현재 국정기조와 국정과제 분석도 없고 민주당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까지 있는 상황에서 투쟁으로 배수진을 치고 교섭 테이블에 앉는 것으로는 쟁취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화보다 노정교섭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역본부장인 중앙위원 ㄹ씨는 “국회 사회적 대화는 합의는 전원일치여야 하는데 5개 참여 단체 중 재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에 대해 여전히 악의적 비난을 하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며 “만약 노조법을 국회 사회적 대화로 했다면 개정을 못 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광장의 핵심 요구인 차별금지법 제정도 현재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며 유보됐다. 현재는 모두가 동의하고 준비하는 산별교섭 재건과 노정교섭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