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협 따른 사무실 제공은 노조 존립·활동 필요시 사용자 의무임을 확인한 판결
우지혜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Ⅰ. 사실관계
주식회사 페르노리카코리아(이하 ‘회사’ 내지 ‘원고’라고 한다)는 2021. 9. 24. 단체협약이 실효된 이후에도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 노동조합(이하 ‘노동조합’ 내지 ‘참가인 노조’이라고 한다)에게 기존 사옥 내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하여 오다가, 신사옥으로 이전한 2022. 11. 21.부터는 신사옥 내 노동조합 사무실을 미제공하였다.
이에 노동조합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사무실 미제공에 대하여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하였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가 노동조합에게 2022. 11. 21.부터 판정일인 2023. 8. 21.까지 사무실을 미제공한 행위’를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하였다. 이후 회사는 2023. 10. 31. 노동조합에게 비정상적인 형태의 사무실(ㅁ자 사무실에 가벽을 설치하여 ㄱ자로 만든 사무실)을 제공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는데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기각하고 초심 결정을 유지하였다. 회사는 이에 불복하여 서울행정법원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의 취소를 청구하였다.
Ⅱ. 판결의 내용
① 단체협약에 따라 사무실을 무상 제공해 온 사용자와 사무실을 제공받아 사용해 온 노동조합의 계약관계는, 특정 사무실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는 민법상 사용대차관계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존립과 활동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불특정 사무실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는 무명계약관계를 포함한다. 한편, 노동조합 사무실의 제공을 포함하는 단체협약이 해지되어 실효되더라도 그 사유만으로 당연히 노동조합 사무실의 반환 사유인 사용수익의 종료 또는 사용수익에 족한 기간의 경과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참가인 노조가 2022. 11. 21. 원고에게 기존 사무실을 인도한 것은 본사를 신사옥으로 이전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점유를 이전한 것일 뿐 계약이나 목적물의 성질에 의한 사용 수익 종료 또는 사용 수익에 족한 기간 경과 후 원고의 해지에 따라 목적물을 반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바, 원고에게는 단체협약 실효 내지 사옥 이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참가인에 대한 사무실 제공 의무가 있다.
② 원고는 신사옥 이전 이후 참가인 노조의 여러 차례 사무실 제공 요청에도 불구하고 참가인 노조에게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을 거부하였다. 본사 사옥 이전 전후의 원고 사업 내지 참가인 노조 조합원 규모의 동일성, 신사옥의 규모와 현황에 비추어 사무실 제공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볼 수 없는 점, 원고의 본사 이전계획에 의하더라도 당초 신사옥에서 최소 2평 이상의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이 가능한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의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 거부에는 합리적 이유가 없다.
③ 원고의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 거부로 인하여 참가인은 업무수행 공간이 없는 상태로 조합활동을 할 수밖에 없어 단결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되었다는 점, 원고와 참가인 간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시점부터 사무실 미제공 행위가 계속된 시점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면서 상호 민사 가처분, 형사고소,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등을 제기하는 등 갈등이 지속되어 왔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의 노동조합 사무실 미제공 행위에는 지배ㆍ개입 부당노동행위 의사가 넉넉히 인정된다.
④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초심 판정은 2022. 11. 21.부터 2023. 8. 21.까지 기간을 특정하여 사무실을 미제공한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 역시 위와 같이 기간이 특정된 이 사건 구제명령의 당부를 판단하였다. 따라서 원고가 2023. 10. 31. 이후 참가인에게 사무실을 제공한 것이 부당노동행위인지 여부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의 위법 여부와 무관하므로,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의 위법을 다투는 이 사건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한편, 원고가 2022. 11. 21.부터 2023. 8. 21.까지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참가인이 받은 불이익 즉 단결권 침해는 이후에 사무실을 제공받았다고 하여 원상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참가인으로서는 위 기간 동안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아 사후적으로 민ㆍ형사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므로, 원고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초심 판정 이후에 참가인에게 사무실을 제공하였다고 하여 참가인의 구제이익이 소멸하였다거나 기존의 사무실 미제공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게 되었다고 할 수 없다.
Ⅲ. 검토 및 판결의 의의
노동조합에게 있어 사무실은 조합원 교육이나 회의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신규 조합원 모집과 조합원 상담이 이루어지는 등 노동조합의 존립과 발전에 필요한 일상적인 업무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보호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하여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공간이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7두40655 판결, 서울행정법원 2024. 5. 2. 선고 2023구합61967 판결). 대상판결은 노동조합에게 있어 사무실이 가지는 중요성을 인정하는 데서 나아가, 그 사용관계에 관한 노사의 통상적인 의사는 특정 사무실의 사용관계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시하였다. 노동조합 사무실은 재산적 교환·이용가치에 중점이 있는 특정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조합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모와 설비를 갖추고 회사 사옥 내부 또는 회사 가까이에 있는 등 조합 업무에 부합하는 기능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은 위와 같은 노동조합 사무실의 특성을 고려하면 단체협약에 따라 사무실을 무상 제공해 온 사용자와 사무실을 제공받아 사용해 온 노동조합의 계약관계는 특정 사무실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는 민법상 사용대차 관계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존립과 활동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불특정 사무실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는 무명계약 관계를 포함한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사용 수익 종료 또는 사용 수익에 족한 기간이 경과한 경우가 아닌 한 단체협약 실효 내지 노동조합의 기존 사무실 반환 등을 이유로 곧바로 사용자에게 노조 사무실 제공 의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기존 대법원 법리(대법원 2002. 3. 26. 선고 2000다3347 판결 등)를 확인하였다.
원고는 참가인 노조가 2022. 11. 21. 원고에게 기존 사무실을 반환함으로써 사용대차 관계가 종료되었기에 본 사안에서는 대법원 2002. 3. 26. 선고 2000다3347 판결 등을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참가인 노조가 원고에게 기존 사무실을 인도한 것은 본사를 신사옥으로 이전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점유를 이전한 것일 뿐 계약이나 목적물의 성질에 의한 사용 수익 종료 또는 사용 수익에 족한 기간 경과 후 원고의 해지에 따라 목적물을 반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바, 원고에게는 단체협약 실효 내지 사옥 이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참가인에 대한 사무실 제공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대상판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에 대하여 특정 사안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경우, 그 고의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대상판결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에 대하여 특정 사안을 거부해서는 아니 될(제공할) 의무가 존재하는지 △사용자의 거부행위가 존재하는지 △사용자의 거부행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해당 행위로 인하여 근로자 내지 노동조합에게 노동3권의 침해가 발생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논증하는 방식으로 부당노동행위 고의를 판단하였다.
한편, 대상판결에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사무실 미지급의 부당노동행위가 소송 전에 해소되었다고 하더라도 노동조합이 기존 사무실 미지급 행위에 대하여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는 것은 구제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사용자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하는 취지의 초심 판정이 있은 후 사용자가 이를 시정한 사정이 있더라도, 기발생한 부당노동행위가 소급적으로 소멸하거나 이로 인한 피해가 원상회복되는 것도 아니며, 사용자가 신청한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절차에서는 여전히 초심 판정이 대상으로 삼은 구제명령의 당부를 판단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