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연대본부 다음달 17일 공동파업 예고 “고사 직전 공공·지역의료 살려야”
서울대·경북대·강원대·충북대·울산대병원 쟁의조정 신청 … “돈벌이 병원 전락 노동자 나 몰라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본부장 박경득) 소속 병원·돌봄 노동자들이 다음달 17일 공동파업을 예고했다. 병원마다 처한 인력부족 문제가 공통적으로 발생하면서 정부에 공공·지역의료 강화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11개 국립대·종합병원 지난해 적자 전년 대비 두 배 폭증
본부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공동파업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기의 지역·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한 국가책임 강화를 걸고 파업에 나선다”며 “정부는 누구나 어디에서 건강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본부는 정부에 공공·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국가가 공공·지역의료를 책임지고, 보건의료·돌봄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역 공공병원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적자에 대해 정부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본부에 따르면 전국 11개 국립대·종합병원의 지난해 총 적자는 5천639억원에 달한다. 2023년 적자액인 2천847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폭증한 수준이다. 이처럼 재무상태가 악화하면서 인력이 부족해도 충원되지 않거나 의료현장에 비정규직 같은 질 나쁜 일자리가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본부가 올해 2분기 기준 전국 15개 국립대병원 정원과 현원 실태를 분석한 결과 정원 대비 현원 비율(정규직)은 84%에 그쳤다. 그런데 무기계약직은 정원 대비 현원 비율이 115.8%로 현원이 정원보다 많았다. 또 본부는 의료서비스와 보건의료노동자 노동조건을 향상하기 위한 주 4일 근무제도 제안했다. 건강보험보장성을 강화하고 의료정보를 민간기업에 제공하지 않는 의료민영화 저지 대책도 요구했다.
박경득 본부장은 “시민 누구나 어디에서든 제대로 된 의료를 받고 병원·돌봄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으려면 의료는 상품이 아니어야 한다”며 “이번 파업은 모두의 건강권을 지키는 요구”라고 말했다.
파업을 예고한 사업장은 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서울대병원식당분회와 대구지부 경북대병원분회, 충북지부 충북대병원분회, 강원대병원분회, 울산대병원분회와 울산동구요양원분회다. 이들 분회 모두 교섭을 진행했지만 노사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쟁의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본부는 사용자와 정부가 본부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공동파업에 나선다고 밝혔다.
“정부사업으로 세운 연구관, 기재부 승인 없어 비정규직·용역 운영”
파업을 앞둔 병원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인력부족을 호소했다. 심지어 국립대병원 사업장은 노사 간 인력충원을 합의했는데도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지 못해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조중래 경북대병원분회장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총 64명의 인력충원을 합의했지만 아직도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며 “병원 인력은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기재부 승인이 없어 충원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순남 충북대병원분회장도 “2023년 임상진료연구동을 지어놓고도 기재부 승인이 나지 않아 비정규직을 채용해 운영하고 있다”며 “정부사업으로 건립한 오송임상시험센터와 오송임상연구관마저 비정규직과 용역노동자로 운영된다. 환자 안전이 심각하게 우려되고 의료의 질이 올라갈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의료대란을 버텨냈지만 어떠한 보상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해 2월부터 전공의 이탈이 본격화하며 의료대란이 발생했고 현장을 지켰지만 실질임금이 인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올해 임금·단체교섭에서 임금 5.1% 인상안과 임금체계 개편안을 요구했지만 사쪽이 수용하지 않았다.
박나래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서울대병원은 40호봉 체계를 72호봉 체계로 늘려 평생 일해도 임금이 정상에 도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호봉 간 차액도 줄여 장기근속해도 임금이 오르지 않아 보상이 사라졌다. 숙련인력이 유출돼 환자 안전과 병원의 장기적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요한 강원대병원분회장은 “지난 2년간 간호직은 일반 승진이 단 한 명도 없다. 병원 노동자들의 업무 의욕은 바닥”이라며 “호봉 간 인상액이 1만원도 안 돼 처우가 심각한데도 지난해 의사직 연봉은 1천만원 이상 대폭 인상했다. 전공의 사직 공백을 메우며 밤낮없이 환자를 지켰지만 아무런 보상이 없다”고 비판했다.
울산의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이자 사립대병원인 울산대병원 노동자도 “돈벌이 경영 위주의 영리병원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공익법인 공시에 따르면 울산대병원은 지난해 355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이민규 울산대병원분회장은 “병원은 최근 근무시간을 일방적으로 바꿔 간호사 교대시 인수인계시간마저 없애려 한다”며 “환자 안전에 치명적일 수 있는데도 수당 부담을 줄이려는 병원의 작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분회장은 “여성직원에게 주어지는 유급 생리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직장어린이집마저 폐쇄하려 들고 있다”며 “직원들의 복지 향상에는 무관심한 돈벌이 병원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