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주 한양대 교수노조 위원장] “다양한 교수 신분, 차별받는 교수 없도록 할 것”
지난해 12월3일 벌어진 내란사태는 많은 사람의 생각과 삶을 바꿨다. 대학 안 교수·연구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치적 중립’을 가치로 여겨 온 연구자들조차 윤석열 퇴진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헌법학자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승주(63·사진) 한양대 교수노조 위원장도 그랬다. 연구자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해 온 그는 비상계엄이 터진 뒤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나섰다. 광장을 계기로 마음을 모은 교수·연구자들과 논의 끝에 노조를 설립해 지난 6월 창립총회도 열었다.
광장을 계기로 생겨난 노조는 학내 문제뿐 아니라 교수노조 관련 법제도 개정에도 힘쓸 계획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방승주 한양대 교수노조 초대 위원장을 만나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었다.
내란 광장에 모인 교수들, 노조 필요성 뜻 모아
- 노조 출범 배경은.
“윤석열 내란사태와 자연스레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에 대해서만 선고기일을 잡아 (윤석열은 기일이 정해지지 않아) 헌법학자로서 위기감을 느꼈다. 교수·연구자 단식농성을 조직해야겠다고 생각해 3월 중하순쯤 광화문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재 재판관 2명을 임명하는 등 계속해서 ‘난’이 일어났다. 전국 교수·연구자단체뿐 아니라 한양대에서 시국선언에 나섰던 교수들 중심으로 여러 사태에 대응해 나갔다. 기자회견·긴급토론 등을 열면서 굉장히 긴박한 시간을 보냈다.
6월3일 조기대선이 치러진 뒤 자연스레 정권이 교체됐다. 그동안 나는 교수·연구자들이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런데 ‘내란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말을 듣고 입장표명을 하자고 마음을 정리했다. 정권교체 이후 (학내 교수모임을 중심으로) 교수협의회를 부활시키자는 의견도 있었고, 교수협의회나 교수평의원회도 고민했지만 법적으로 분명한 보호를 받는 교수노조로 뜻이 모였다.”
- 왜 노조일까.
“법적으로 매우 간단한 문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상 유일한 교섭단체는 노조다. 2018년 헌재가 교수 등 대학 교원의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원노조법은 헌법불합치라는 판결을 내린 뒤 2020년 교원노조법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유일하게 교수노조만이 사용자인 대학과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맺을 수 있다. 그간 교수들이 필요성을 못 느꼈거나, 느꼈어도 이를 드러내서 이야기할 계기가 없었을 텐데 광장 모임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교수들도 신분이 정년트랙·비정년트랙·강의전담교수 등 다양하고, 각 교수에 대한 대우나 신분상 요건이 다 달라 많은 교수들이 노조 필요성에 공감하고 개선을 바라는 의견을 줬다. 비정년트랙 교수는 안식년도 허용이 안 되고 강의전담교수는 정년트랙 교수 급여의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고충들이 쌓여 있더라. 그런 문제를 노조를 통해 다룰 수 있게 됐다. 이들은 교수협의회 등 기존 조직을 통해 이야기해 봤지만 해결이 안 됐다며 노조가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이끌어 내길 바라고 있었다. 단협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일종의 규범이기에 노조는 입법작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교수협의회·교수평의원회가 아닌 교수노조다.”
- 상급단체 가입은.
“교육부 조사를 보면 전국에 5~6개 정도 되더라. 아직은 급하지 않아 지켜보고 있다. 먼저 노조를 만든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려 한다. 미국이나 독일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원이 하나의 조직으로 움직인다. 우리도 그렇게 된다면 교육 관련 의사 관철의 힘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학내 민주화부터 교원노조법 개선까지 목표
외국인 비정년트랙 교수 고충 개선할 것”
한양대는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R&D(연구개발) 카르텔·채용비리 문제가 불거졌다. 김형숙 한양대 교수가 본인의 전공(체육교육)과 무관한 공대 교수로 임명됐을 뿐 아니라, 약 400억원 규모의 바이오·의료개발 관련 정책사업을 맡은 것이다. 김 교수는 윤석열과 지인이 겹친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한양대는 R&D 카르텔 관련 제보자였던 송기민 한양대 교수를 해임했다.
- 향후 활동 계획은.
“학내 교수 채용이나 교수 해임 문제가 노조 결성의 발단이 되기도 했으니 대학행정이 투명하고 합리적이며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싶다. 대학행정의 투명화·합리화·민주화가 목표다. 또 교수노조가 만들어야 할 무게 중심, 균형추로서의 역할은 대학이 상업화돼 갈 때 상아탑이고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역할을 잘하게끔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기도 하다.
교권보호·권익구제 문제와 근로조건 향상 과제도 있다. 교수는 학교에서 받는 임금을 통해 생활하는 사람이니 임금 수준도 적정해야 한다. 근로조건 향상의 직접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 향상이 세 번째 사업이다.
나아가 교수노조의 법적인 문제와 관련된 연구도 필요하다. 교원노조법상 교수노조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라도 말이다. 교원노조법은 모든 쟁의행위와 정치활동을 금지했는데,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금지되지 않는 정치활동이 노조가입을 이유로 금지된다는 것이 말이 되나. 노조활동이 여러 제도와도 연관돼 있어 우리의 시각이 한양대 안에만 머무를 수는 없을 것이고, 우리나라 교원노조법과 제도에 관해 다른 대학 교수노조와도 논의해 보고 싶다.”
- 비교적 연구환경이 좋은 한양대에서 교수노조가 설립됐다.
“교수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교원노조법 개정이 2020년 이뤄졌으니 아직 제도가 5년밖에 안 됐다. 상당히 짧은 시간이다. 원광대·서울대·가톨릭대·경기대·서강대 등에서 노조가 생겼으니 우리가 빠른 건 아니다.”
- 교수는 대학의 노동자이면서 대학원생·조교의 사용자이기도 하다.
“나도 고민했던 문제다. 교수노조의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했다. 노조의 대원칙은 자주성의 원칙인데 자주성은 독립성을 뜻하기도 한다. 독립성은 사용자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측면과 국가로부터 독립을 의미한다. 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가 노조에 들어오면 노사 간 단체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조합원 자격의 순수성인데, 교수는 어떤 때는 사용자가 됐다가 근로자가 된다. 어떤 교수가 총장을 하면 사용자가 되는데 총장을 그만두고 평교수가 되면 근로자가 된다. 조합원인 교수들도 노조활동하다 교무위원이 되면 경영자·사용자가 되니 노조활동을 멈추도록 규약에 담았다.
교수가 조교에게 일을 시키기도 하지만 조교가 받는 장학금·임금은 학교가 지급한다. 교수와 학교 모두 사용자적 역할을 한다고 볼 수는 있지만, 추후 조교의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면 학교와는 교섭이 가능하겠지만 교수는 조교의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
- 교섭 계획은.
“총장과 상견례 때 올해 10월까지는 교섭을 마치자고 이야기했다. 교섭요구안은 조금 더 논의를 해 봐야 하지만 공동체에서 같이 살아가는 교수들 중 일부 구성원이 차별받고 있다거나 속으로만 곪아 가서야 되겠나.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외국인 비정년 트랙교수들도 조합원으로 들어와 있고 고충이 상당하다. 학교쪽과 협의해 가능한 처우개선 방향을 찾아보려 한다.”
- 노조설립이 합법화됐지만 교수노조 설립이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다.
“곧 노조가 없는 대학도 결성될 거라 본다. 한양대도 시국선언과 단식농성, 내란을 계기로 노조라는 결실을 보게 됐다. 아마 조직을 위한 여러 역량들이 필요할 것이다. 나도 시국선언을 요청하기 위해 전국 로스쿨·법대 교수·연구자의 이메일을 확보해 메일링리스트를 정리하는 작업을 내란 때 했다.(미소) 가입제안서를 보내는 노하우 같은 것도 축적해야 하지 않겠나. 다른 교수나 대학도 그런 역량은 충분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고 필요성을 느낀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 이제 막 노조 활동에 발을 뗐다.
“노동 문제는 우리 대한민국 경제·사회와 직결된다. 헌법 119조에서 대한민국 경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전제로 한다고 밝힌다. 그러면서도 카르텔이나 독과점으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경제민주화를 위해, 또 시장경제 원활한 기능 회복을 위해 국가가 일정 부분 개입하고 조정해야 하고 그 근거를 헌법 119조 이하에서 쭉 두고 있다. 1919년 4월11일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 헌장 이후로 우리 헌법이 지켜 온 정신은 ‘균형’이다. 균형은 헌법에서 여러 번 반복하고, 임시정부 헌장을 작성한 조소앙 선생의 3균주의에도 나오는 일종의 평등이념과도 연결된다.
균형을 노조로 돌려보면 노사관계, 노사의 세력균형을 뜻한다. 가장 중요한 헌법원리 중 하나가 무기평등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1919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헌법의 중요한 민주정신이자 민주주의 뿌리가 되는 균형 정신이다. 사용자는 근로자 없이 기업을 운영할 수 없고, 근로자도 사용자 없이 일할 곳을 찾을 수 없다. 노사가 상생하려면 양쪽 균형이 잘 맞게끔 단체교섭도 해야 하고, 단체협약도 맺어야 한다. 사용자는 결국엔 근로자복지도 지금까지 신경 썼던 것보다 더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강조했던 산업안전 문제도 그렇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러 가서 죽어서 못 돌아오는 경우가 발생한다. 산업안전부터 근로자복지까지 사용자는 더욱더 신경 쓰고 노동자와 상생하는 것을 목표해야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가 골고루 발전하고, 경제민주화도 잘 달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