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호 죽음 23년 만] ‘원·하청 교섭길’ 열리고 ‘손배폭탄’ 어려워진다

노조법 2·3조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 대통령 공포 이어 6개월 뒤 시행

2025-08-24     강한님 기자
▲ 민주노총과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가 24일 노조법 개정안 귝회 본회의 통과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환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앞으로 6개월 뒤 원청 사용자와 하청 노조가 같은 교섭 테이블에 앉는 모습을 보게 된다. 두산중공업 배달호·한진중공업 김주익씨·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등 수많은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내몰았던 손해배상 청구는 대폭 제한을 받게 된다.

국회는 24일 오전 본회의를 열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재석 186명 중 찬성 183명, 반대 3명으로 가결했다. 이날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이 정부에 이송되면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공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법개정안은 공포 뒤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

근로계약서 체결 안 해도 하청노동자와 교섭 의무
경영상 결정도 근로조건에 영향 미치면 쟁의행위 대상

노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원청 사용자는 하청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한다. 다만 단서가 붙는다. 원청 사용자는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범위에서 사용자가 된다.

법원 판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법원은 현대중공업과 CJ대한통운·현대제철·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등의 사건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일부 의제에 한해 인정해 왔다. 최근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산업안전보건 문제와 관련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이 있었고, 한화오션 사건에서도 △성과급 지급 △학자금 지급 △노동안전 등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 의제에 대해서는 하청 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노조는 현행보다 더 다양한 이유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노사가 이견이 있다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등 사용자의 경영상 결정이 포함될 수 있다. 사용자가 명백하게 단협을 위반해도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근로자의 지위’에 대한 노사 입장차를 이유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는 조항도 개정안에 반영됐다.

부당노동행위 목적 손배 청구 금지
사용자 불법행위로 파업, 배상 안 해도 돼

노조법 3조 개정안에는 사쪽의 손배·가압류로 목숨을 잃거나 고통을 받은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2003년 두산중공업의 배달호씨가 65억원의 손배 고통을 호소하며 몸에 불을 질렀고, 같은해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씨가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해 150억원대의 손배를 맞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여 47억원 손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앞으로 사용자는 노조법에 따른 단체교섭·쟁의행위, 노조활동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노조·노동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노조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운영을 방해할 목적 또는 조합원의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손해를 입히려는 목적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 노조·노동자는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부득이하게 손해를 끼쳐도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

법원은 노동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데,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등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관여 정도 △손해의 원인과 성격 △그 밖에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위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항에 따라 책임비율을 정한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고려한 조항도 들어갔다. 노조와 노동자는 법원에 배상액의 감면을 청구할 수 있고, 법원은 배상의무자의 경제 상태와 부양의무 등 가족관계, 최저생계비 보장 등을 고려해 각 배상의무자별로 감면 여부와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

▲ 편집 김효정 기자

당정, 시행령·매뉴얼·보완입법으로 구체화할 듯

정부는 원청과 하청 노조 간 교섭 절차와 방법, 노동쟁의 등에 대한 사후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본회의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에도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법 시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고 국회에 보고한다’는 내용의 부대의견이 담겼다. 노동부는 지난달부터 전문가 연구회를 꾸려 구체적인 법 적용 방안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는 지침과 매뉴얼을 통해 담을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행령 개정이나 보완입법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오전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가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당으로서 긴밀한 당정협의를 통해 이 법이 현장에 잘 정착할 수 있는 후속 조치를 고민하고 진행하겠다”며 “시행령·매뉴얼 (등도 고려할 수 있고)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보완입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배달호·김주익 열사를 비롯한, 원청 얼굴 한번 보겠다고 절규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가닿은 결과물”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한 뒤 “민주노총에서는 진짜사장 교섭쟁취 투쟁본부를 결성하기로 했고, 이 본부를 통해 원청과의 교섭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노총 “개정 취지 퇴색 안 돼” 재계 “보완입법해야”

실제 법적용 과정에서 개정안 취지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노총은 개정안 통과 후 입장을 내고 “개정된 노조법이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집중 지원할 것”이라며 “개정안의 취지가 퇴색되거나 허울뿐인 제도로 전락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필요시 추가입법을 통해 노동기본권의 완전한 보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6단체는 곧바로 유감을 표명하며 재계의 입장을 반영한 후속조치를 요구했다. 향후 6개월간 개정법 연착륙 방안을 두고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측되는 대목이다.

경제 6단체는 입장문에서 “노조법상 사용자가 누구인지,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사업경영상 결정이 어디까지 해당하는지 불분명해 노사 간에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산업현장의 혼란이 최소화되도록 보완입법을 통해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정부에서도 유예기간 동안 재계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충실히 보완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