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노력이 보태져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청노동자 투쟁으로 유죄 판결 받은 동지를 위로하며
노동조합은 쪽수(조합원수)가 힘입니다. 적은 수의 노동자가 모여 노조를 만들면 회사도 무시하지만, 상급단체의 관심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조합원수에 따라 가맹 분담금을 납부하고 위원장 선출의 선거권이 주어지기에 상급단체 입장에서는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효율적으로 조직관리를 하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지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합원수가 적고 교섭의 의제가 복잡한 단위노조를 만들면 상급단체가 반기지 않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들여야 하는 노력에 비해 얻어지는 성과는 적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원청이 대기업인 하청노조가 그렇습니다. 원청이 수백 개의 하도급 업체에 도급 형식으로 일을 쪼개어 맡기면서 발생하는 하청노동의 노동조건 개선 문제는 원청노조와도 이해관계가 부딪히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고용관계가 없기에 원청 대기업을 교섭의 자리로 끌어내기도 어렵습니다.
몇 해 전 OB맥주의 물류 업무를 담당하던 하도급 노동자를 지원해 만들었던 노조도 그랬습니다. 당시 OB맥주는 하청업체 노동자를 물류팀에 편입시켜 자기 직원처럼 일을 시켰습니다. 전문성은커녕 작업 도구와 비품마저 OB맥주가 지원하는 하청업체는 1~2년마다 수시로 바뀌었고 그래서 하청노동자 근속이 올라도 월급은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맴돌지요.
결국 참다못한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OB맥주를 상대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지역에서 250일이 넘는 천막농성을 벌이기도 했지만,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 결정권을 쥔 OB맥주 본사를 협상의 자리에조차 불러내기 버거웠습니다. 협상의 당사자가 아니라며 계속 사용자 책임을 부정하는 OB맥주와 교섭을 위해서는 상급단체의 지원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조합원과 찾아간 금속노련 사무실에서 김만재 당시 금속노련 위원장과 마주 앉았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노총 내에서 강성 노동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김만재 전 위원장과 김준영 당시 사무처장(현 위원장)에게 OB맥주 하청노동자의 고용승계 문제를 금속노련의 주요 과제로 삼고 교섭 지원을 해달라 요청했습니다. 체면이 있으니, 그들이 OB맥주 하청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는 들어 볼 테지만 조합비를 낸 지 6개월도 안 되는 지역의 작은 노조의 요구를 받아 줄 것이라 크게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당신들은 OB맥주 투쟁을 금속노련의 투쟁으로 받아 안고 지원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OB맥주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의혹이 제기될 수 있도록 도왔고 OB맥주의 파견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끌어냈습니다. 이후에도 포스코 하청노동자 문제와 함께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불법적 계약 해지를 막고 고용승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OB맥주 하청노동자의 고용승계 사안을 연맹의 핵심 투쟁 과제로 삼는 바람에 다른 사안 해결은 뒷전이라는 비판도 제기돼 곤란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들이 작은 변방의 노조의 문제를 연맹의 주요 과제로 부여잡고 놓지 않은 이유는 하청노동자의 억울한 고용승계 문제가 우리 노동시장에 만연한 간접고용의 표본이기 때문이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작은 하청노조의 간접고용 문제를 부여잡고 놓지 못한 탓에 당신들은 이후에도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의 투쟁도 온몸으로 받아 안고 투쟁하다 윤석열 정권하에서 감옥에 가고 구속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13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 등으로 법원으로부터 징역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제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할 수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저임금 장시간의 노동착취와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이윤을 창출했던 우리 노동시장의 관행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진전입니다. 효율성을 거슬러 우직하게 명분을 지켰던 당신들의 노력이 보태져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leeseyh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