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에서] 배달노동자 간이형 쉼터, 아직도 없다
“신호대기 중, 숨이 턱 막히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순간, 위험을 직감하곤 합니다. 매년 여름마다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싶어요.” “달릴 때나 신호대기 중일 때나 햇빛은 고스란히 저의 온몸에 내리꽂히니, 그때마다 살갗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죠..”
배달라이더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이들의 갈증과 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히기 위해 시흥시노동자지원센터는 폭염기 배달노동자와 함께하는 생수나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7월 하순께 공식 온도 39도,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웃돌 것 같은 오후 2시부터 생수나눔 캠페인을 시작했다. 배곧 상가 밀집 지역, 세계로 마트 주변, 배달이 성황을 이루는 곳이다. 상가 안쪽에 비어 있는 가게 통로에서 쓰러질 듯한 작은 의자에 몸을 의지한 채, 헬멧만 겨우 벗고 고개를 떨구고 통로를 오가는 미세한 바람으로 땀을 닦고 있는 몇몇 라이더들을 접했다.
폭염이 재난이 된다는 노동자 당사자의 이야기는 진즉부터 있어 왔다. 2023년 7월 시흥센터가 진행했던 ‘시흥시 이동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와 쉼터 개선방안 연구’ 보고회에서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는 “도로 위 배달노동자는 폭염·폭우·폭설·혹한 등 위험한 날씨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매년 겪는 홍수나 산불피해도 재난이지만 한낮 폭염에 지쳐 쓰러져 가는 노동자들 또한 재난”이라고 덧붙였다.
기후위기가 길 위의 노동자들에게는 재난적 노동환경으로 작동하며 먹고사니즘의 생존보다 생명 보존 자체의 위기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온열질환의 대표증상인 어지럼증은 배달노동자에게 곧장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생수나눔 캠페인을 함께했던 라이더 노동자는 며칠 후 배달 중 어지러움 현상으로 발을 헛디뎌 발목 인대 부분파열로 3주간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3주간 수입은 제로다.
2019년 광역지자체 최초로 노동국을 만든 경기도의 적극적 노동행정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 중 하나로 ‘이동노동자 쉼터’ 설치를 꼽고 싶다.
거점형 쉼터를 넘어서, 필자는 2020년도부터 대리노동자와 함께 혹한기 대리노동자들의 야간 대기시간에 잠시라도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콜수가 많은 상가 밀집지역을 활용해 간이쉼터 설치를 경기도 노동국에 요청했다. 덕분인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거점쉼터 10개, 간이쉼터 14개가 설치 및 조성 중이다. 전국적으로도 속속 간이형 이동노동자 쉼터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서는 이동노동자들의 접근성과는 거리가 먼 쉼터를 조성했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오기도 한다. 시흥시는 2021년에 거점형 쉼터를 조성했다. 그러나 시흥센터가 ‘쉼터 개선방안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이용접근성과 효율성 문제가 끊임없이 현장 노동자들로부터 들려왔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나뉘어진 지형적 특성과 수요자의 니즈를 반영한 실효성 있는 간이형 쉼터 설치를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없다. 옆 도시는 벌서 4개째 간이쉼터가 조성됐다. 지자체마다 예산 상황이 상이하다고는 하나 노동자들을 위한 시흥시 행정은 노동인권 민감성이 떨어진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계속 나온다.
시흥센터는 궁여지책으로 라이더 노동자들의 간이쉼터 역할을 할 수 있는 상가 밀집 지역 편의점을 통해 쉼터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커피 쿠폰을 통해 휴식권을 지원하기도 했다. 올해는 배달라이더 안전지킴이 활동을 통해 도로 파손 및 공유자전거 불법주차 신고, 12대 중과실 사고 예방, 라이더 산재지원 사업 안내 등을 하며 시흥시와 라이더를 위한 공익사업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는 간이쉼터 하나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시흥시가 폭염대책으로 관내 무더위쉼터 358개를 전면 개방한다는 소식을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아파트 경로당과 행정복지센터다. 음식을 시킬 때는 감사한 사람들이지만 땀내나는 자신의 모습에 불편해할 시민들을 위해 오늘도 라이더 노동자들은 빈 상가 건물 한 귀퉁이로 발걸음을 옮기고 만다.
오늘도 폭우가 쏟아졌고 몇 달 후에는 혹한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