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1천533일 만] 삼성디스플레이 백혈병 노동자 ‘산재인정’ 판결

피해 노동자 “근로복지공단, 항소로 고통 주지 마라” … 반올림 “국정기획위 산재 신속처리 제안 수용해야”

2025-08-18     이재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삼성디스플레이를 다니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의 항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피해당사자는 “더한 고통을 주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관련단체는 산재 상소제기 기준을 마련해 불필요한 소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국정기획위원회 입장을 공단이 즉각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 입사 뒤 업무환경 복합·누적적 영향에 발병

18일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디스플레이를 다니다 지난 2021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정아무개(32)씨의 산재승인 여부를 다툰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지난 13일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정씨가 18세에 입사했고, 그 이전 직업력이 없는 점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과 관련한 가족력이나 기저질환이 없는 점, 이 백혈병의 평균 진단 연령은 60대 후반인데 정씨는 발병 당시 27세에 불과했던 점, 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 당시 일부 위원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점 등을 종합해 공단의 불승인처분을 취소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정씨의 상병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업무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 질병을 유발했거나 악화했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도 참고했다.

정작 정씨는 불안감을 호소했다. 유사한 사례에서 공단이 항소한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정씨는 “지난한 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이전 사례를 보니 공단이 항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할 새 없이 당혹감을 느끼게 됐다”며 “백혈병으로 인한 합병증과 불임 같은 후유장애에 대한 걱정이 더한 지금 조금이라도 안식을 얻으려는 찰나 항소라도 진행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부디 더한 고통을 주지 않았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국정기획위 “공단 불승인·항소 남발 중단, 판단기준 법제화”

반올림은 공단이 국정기획위의 판단 등을 존중해 불필요한 상소를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기획위는 5일 낸 보도자료에서 △법원의 규범적 판단기준을 법령에 명문화해 불필요한 소송 반복을 피하고 △공단이 반복 패소하는 사건은 인정기준에 이를 반영하고 △상소 기준을 마련해 불필요한 상소제기를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재 처리기간을 줄이기 위한 제안이다.

반올림은 “공단은 국정기획위 제안을 당장 실천해야 한다”며 △첨단산업 직업병 피해 항소 말고 판결 수용 △불승인 남발 제한을 위한 규범적 상당인과관계 법제화 △국가와 기업 차원의 첨단산업 노동자 건강과 생명보호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편 정씨는 18살이던 2011년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해 천안과 탕정사업장에서 셀(액정) 검사와 편광판 부착 업무를 10년간 했다. 2021년 1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항암치료 중 2021년 6월3일 산재를 신청했다. 이미 삼성디스플레이 액정공정 노동자 가운데 2명이 혈액암(림프종)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런데 공단의 역학조사 이후 업무상질병판정위는 2022년 11월10일 정씨의 산재신청을 불승인 처분했다. 정씨는 2023년 2월2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산재신청 뒤 1천533일만에 법원은 공단의 처분을 취소하고 정씨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