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 “금융업계는 주 4.5일제 촉매제, 빠른 시행·확산 가능”
“노동시간 단축은 반드시 해야 한다. 가능하면 빨리 가고 싶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주 4.5일 근무제가 당연해지는 시점은 언제인가’를 묻는 기자 질문에 한 답이다. 남는 질문은 ‘어디서, 어떻게’다.
지금 당장, 큰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실현 가능하고, 사회에 주 4.5일제를 전파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업계부터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형선(47·사진)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노조가 그런 곳”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노조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금융산업에서 주 4.5일제는 도입과 시행이 어렵지 않고, 일단 도입하면 사회 전반적인 체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확실한 메시지로 금융 노사가 주 4.5일제를 도입한 뒤, 완전히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노조는 지난해부터 영업 시작 시간 30분 늦추기와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해 왔다.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도 이를 쟁점화하고 있으며,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외면하면 다음달 말 파업한다는 계획이다.
“주 4.5일제 도입 가능성, 파급력 가장 높은 금융업계”
- 왜 금융노조에서 주 4.5일제를 주장하나.
“모든 노동자가 원하는 건 당연하다. 금융업계는 도입 가능성이 가장 높고, 파급력이 가장 강한 곳이라서다.
금융노조는 코로나19 당시 영업시간을 단축해 본 경험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에도 꽤 오래 지속했다. 은행 손해는 없다. 노동생산성은 줄어들지 않아 추가적으로 드는 비용도 없다. 개별적으로 사용자들을 만나보면, 그들도 금액적으로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확산은 빠르다. 기업들은 자금 관리와 대출 및 신용업무 등을 상시적으로 해야 한다. 은행이 금요일 오전까지만 업무를 보면, 모든 기업 행정도 이 시간에 맞춰진다. 모든 기업으로 확산이 예상되는 구조다.
은행 창구를 찾는 소비자들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평일 은행 영업시간을 30분씩 늦추면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영업시간을 오전 9시30분~오후 4시30분으로 하자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특정 요일을 정해 은행에 방문하지 않는다. 평일 영업시간이 30분 늘어나는 게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는 방향이라고 본다.”
금융 노사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영업시간을 오전 9시~오후 4시에서 오전 9시30분~오후 3시30분으로 1시간 축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해지된 2022년 4월 이후도 영업 단축을 이어 갔다. 노사 공동 TF를 통해 영업시간 단축 논의를 하자는 노사 합의가 있었지만 2023년 1월 이복현 당시 금융위원장이 영업시간 정상화를 이야기하자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법률 자문을 받은 뒤 오전 9시~오후 4시 영업으로 돌아갔다.
영업시간이 줄었을 당시에는 금융분쟁은 줄었다. 2020년 1천835건에서 2021년과 2022년 각각 1천328건, 1천446건으로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 같은 기간 12조1천억원에서 16조9천억원, 18조5천억원으로 각각 늘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고착화 지적
일단 제도도입하면 해결 논의 촉발할 것”
- 금융계에서 4.5일제를 도입하면 어떤 도움될 것이라고 보나.
“크게 두 가지다. 저출생과 지역소멸. 금융업계는 저출생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사실 다른 업계보다 관련 제도들은 가장 앞서 있지 않나. 그럼에도 노조 내부 설문을 살펴보면, 출생아 감소율이 전국 출생아수 감소율을 상회한다. 전국 출생아수는 2014년 43만5천435명에서 2023년 23만28명으로 47%가 낮아졌는데, 노조가 지난해 8월 진행한 설문을 보면 7개 은행지부 출생아수 합계는 같은 기간 2천688명에서 996명으로 63% 감소했다. 수당을 많이 지급하는 방법으로는 저출생 개선에 효과가 없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소멸은 쉬는 날, 사람들이 지역으로 놀러가면서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쉬는 날이 많아지면 해외로 놀러가겠지만, 쉬는 날이 하루 더 늘어난다고 해서 매번 그렇게 가겠나. 지역에 친구들이나 부모님들을 만나러 다니고 여가를 즐기면서 소비가 확대되면서 지역에 활기가 돌 것이라고 본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도 대체공휴일 1일간 발생 소비 지출액을 2조4천억으로 계산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도 주 4일제가 ‘지독한 인구소멸 늪을 벗어날 기회’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강원도지사로서 하는 그 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일각에서는 비교적 좋은 직장에 다니는 금융노동자들이 주 4.5일제 도입을 이야기하는 것을 비판한다.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지위의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더 벌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강화한다는 지적이다.
“따로 짚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조는 논의를 촉발하는 촉매제다. 주 4.5일제를 도입해 사회적 의제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러면 불안정 노동자들에게까지 주 4.5일제를 어떻게 도입할지에 대한 논의가 훨씬 촉발할 것이라고 본다. 과거를 짚어 보면, 금융노조는 2002년에 주 5일제를 선제 도입했다. 2004년에 주 40시간 근무로 법이 개정돼 1천명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부터 시행했고, 7년이 지난 2011년에야 전 사업장으로 뻗어 나갔다.
물론 노조 내부에서도 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금융 노사가 공동으로 기금을 출연해 운영하는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있다. 재단에서 금융계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노동환경이 좋지 않은 분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확실한 정부 메시지로 노사 도입 가능
변화 없으면 축제 같은 9월 파업 기획 중”
-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노조는 임금삭감 없는 주 4.5일제를 주장한다. 이전에 주 5일제 도입시에는 휴가를 임금보전 없이 반납하는 등의 카드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임금삭감 모델은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시범사업에서 이미 실시했다. 지금은 임금삭감 없이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금융노조는 이미 코로나19 시기에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해 본 경험이 있다. 논의를 막고 있는 사용자협의회가 의지만 갖는다면 바로 시행이 가능하다고 본다.”
- 정부가 교섭에 개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개입과 지원이 필요한가.
“필요한 건 메시지다. 금융업계는 타 업종처럼 지원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현재 사용자협의회가 논의를 막는 이유는 정부에 책을 잡힐까 우려해서다. 금융산업은 정부의 규제를 강하게 받는 특성이 있어 정부 눈치를 많이 살핀다. ‘금융 노사가 선도적으로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고, 지원한다’는 정부 메시지를 원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국정기획위원회 국정과제 보고안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주 4.5일제의 확산을 위해 금융과 보건의료업계에서 노사 자율 실시를 촉진하고 지원한다고 했다. 사용자협의회의 입장 변화가 주목된다.
- 금융노조는 사용자협의회의 움직임이 없다면 9월 말 파업을 하겠다고 했다.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고 보나.
“예단하지 않겠다. 다만 현재 상황이 반복되면 진짜 파업을 벌일 거다. ‘축제 같은 파업’을 기획하고 있다. 주 4.5일제를 바라는 시민들이, 길을 가다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 같은 파업. 주 4.5일제는 누구나 도입을 바라는 의제니까. 물론 파업을 안 하고 주 4.5일제를 전 은행에 도입하는 게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