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과제] 노동자추정·초기업교섭으로 노동시장 ‘판갈이’ 시도
단협 효력확장·직무급제로 노사에 ‘숙제’ … 노동위 기능 강화, 노동 사법화 우려 대목도
“보호막은 치되 디테일은 힘의 논리에 맡긴다.” 윤곽을 드러낸 이재명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일하는 사람은 우선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자인지 아닌지 확인한다. 노동자라면 기존의 안전망에 편입된다. 노동자가 아니라면 다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상 노조를 만들거나, 노동공제회 설립 근거가 되는 법을 만들어 처우를 개선하거나 보호를 받는다. 단 어느 쪽이든 보호의 범위와 내용은 노사 역학관계가 결정할 거로 보인다. 성긴 국정과제의 공백을 메울 논쟁이 예상된다.
“노동자냐” 따져 처우개선 경로 확대
13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국정기획위원회 국정과제 보고안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은 △차별과 배제 없는 일터 6개 과제 △노동존중 실현과 노동기본권 보장 4개 과제 등에 집약돼 있다. 이외에도 국정기획위원회 내 다른 분과에도 유관 과제가 편성된 것으로 보인다.
출발점은 노동자 추정이다. 노동자냐 아니냐 다툼이 발생하면 우선 노동자로 본다. 사용자가 “노동자가 아니다”고 주장하도록 하는 반증권 보장법을 만들어 노동위원회가 이에 따라 노동자성을 판단하도록 한다.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에 걸쳐 관련 입법과 절차 마련 등이 병행될 거로 보인다. 노동자성 여부에 대한 오분류 근절을 위한 업종별 감독과 이를 토대로 한 업종별 노동자 판단 매뉴얼이 노동자성 판단 기준이 된다. 노동위 개편이 전제된다.
노동자라면 보호 심도를 높인다. 5명 이상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직장내 괴롭힘과 모성보호 같은 규정을 우선 적용하고 재정적 부담이 수반되는 노동시간과 가산수당, 유급 공휴일과 대체공휴일 등 적용도 사업자 지원과 함께 집어넣는다. 초단시간 노동자도 더 보호한다. 2년 도과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연차유급휴가와 공휴일·대체공휴일, 퇴직금 적용 등을 개선한다. 노동자성 획득으로 기대할 수 있는 보호조치다.
보다 적극적인 처우개선은 노조의 몫이다. 정부는 초기업별 단위 교섭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노동계가 요구해 왔던 정책이다. 공공부문은 모델이 있다. 2021년 보건의료노조와의 노정합의, 교육부 및 시·도 교육청과 학교비정규직연대와의 교섭이다.
민간에는 공공부문 조달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초기업 교섭 모델 지도 컨설팅을 내년 상반기 시행한다. 산업·업종·신산업 내 초기업 교섭 기반을 형성하고 촉진하기 위한 노사협력·격차해소 프로그램도 같은 시기 지원한다. 단체협약 적용을 확대하는 단협 효력확장제도는 2027년부터 도입 계획이다. 노동계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정답으로 강조했던 대목이다. 초기업별 단위 교섭 내용을 채우는 것은 노사의 역량에 달렸다. 사용자단체 관련 과제는 없어 노동계 요구는 수용하되 사용자에게 의무는 지우지 않았다.
비정형 머물면 노동공제회·안전망 일부 편입
관건은 노동자성 판단이다. 노동위에 맡긴다는 계획이지만 사용자가 노동위 결정을 호락호락하게 수용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 법정 공방이 재연할 여지가 많다. 근로기준법 2조 근로자개념을 확대하거나 판단지표를 법률에 명문화하는 방식이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다만 판단지표를 법률에 넣으면 이를 우회하는 편법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이 대목에서 노사단체의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는 근로기준법 2조 개정은 임기 내 추진할 장기과제로 보고 있다. 그전까지는 어떤 방식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할지 정리되지 않았다. 행정부에만 맡기면 사법부 판결문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성이 부정된 노동자는 가칭 일터 권리 보장법 제정으로 보호한다.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같은 계약형식과 무관하게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다. 내년 상반기 제정하고 1년 뒤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비정형 노동자에게는 최저보수 보장 방안을 마련해 적용한다.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별도 적용을 위한 실태조사와 최저임금위원회 심의를 내년 지원한다. 최저보수 적용을 위해 대상과 규모, 노동조건과 보수체계 등을 살피는 실태조사를 내년 상반기에 실시하고 2027년 상반기 이해당사자 의견을 수렴해 방안을 마련, 시행한다. 쉽지 않은 과제로 보고 실태조사와 외국사례 연구, 이해당사자 간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준비할 계획이다.
이들 지원 채널은 지역 노동센터 같은 기구를 활용한다. 기존 이음센터는 2028년 하반기까지 폐지하고 지역 노동센터, 민간·지자체 노동자지원센터 사업을 복원한다. 사용자와의 갈등 등 분쟁을 조정하는 기능은 노동위에 둔다. 노동법원까지 설치해 신속한 권리구제를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노동공제회 근거법을 마련한다.
“문재인 넘어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재추진
도전적인 과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재추진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다가 사실상 좌초했다. 이재명 정부는 실태조사와 분석을 통해 생명·안전업무 기준을 내년 안에 마련하고,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만든 뒤 상시지속·생명안전업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다시 추진한다. 전환 협의를 마쳤는데 전 정부가 집행하지 않은 곳은 신속히 전환을 추진한다.
민간 사업장 대상으로는 정규직 전환 지원금 사업을 재개한다. 공공조달 참여 기업에 가점을 부여하는 등 민간확대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원청에 의한 동일업무 용역업체 변경시 간접고용 노동자 고용승계 의무화를 위한 법률도 제정할 방침인데 재계의 반발이 집중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면 생명·안전업무를 강조해 전환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비합리적인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포함된 걸로 보인다. 다만 자회사와 공개경쟁채용 같이 이미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차단할지 쟁점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도입도 논쟁적이다. 올해 안에 근로기준법을 고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포함하고, 대규모 실태조사를 통해 판단 매뉴얼을 마련할 계획이다.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처우를 금지하는 것으로 비정규직 보호의 성격이 강하다.
다만 임금분포제를 국가통계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내놓고 있어 기업 간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임금격차 해소의 여지도 있다. 이때 재계에서 줄곧 요구한 ‘직무성과급제’와 어떻게 구분할지, 노동계의 직무급에 대한 원초적 반발을 어떻게 잠재울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