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노동범죄센터
임금체불과 산재사망 같은 ‘노동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법제도와 더불어 효과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노르웨이는 ‘A-krimsenteret’라는 특별한 제도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 있다. ‘노동범죄센터(Arbeidslivskriminalitetssenter)’라 불리는 이 조직은 단순한 단속기관이 아니라, 다기관 협업에 기반한 예방 중심의 대응 체제이다.
이 센터에는 노동감독청(Arbeidstilsynet), 경찰청(Politiet), 국세청(Skatteetaten), 사회보험청(NAV) 등 네 개 기관 담당자들이 한 공간에 상주하며 함께 일한다. 이들은 노르웨이 전역 7개 도시에 지역별 노동범죄센터를 설치하고,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에 대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대응에 나선다.
‘노동범죄(Arbeidslivskriminalitet)’는 노르웨이 정부가 사용하는 정책적 개념으로 임금·근로조건·사회보장·세금 규정을 조직적·의도적으로 위반해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사회정의를 훼손하고, 불공정한 시장 질서를 야기하는 범죄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불법 고용·허위 근로계약·유령회사 설립·세금 탈루·사회보험 사기·외국인 노동자의 강제노동 또는 인신매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노동범죄센터는 단일 기관의 권한으로는 대응이 어렵고, 복합적이며 고의적인 조직범죄의 성격을 띠는 노동범죄를 처리한다. 예컨대 불법하도급은 노동감독청의 출입 조사만으로 단속이 어렵고, 등록된 사업자가 허위일 경우 국세청의 확인이 필요하며, 급여 횡령이나 임금체불이 병행될 경우 경찰의 수사로 이어져야 한다. 이럴 때 각 기관이 따로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대응 속도는 느리고, 그 강도도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르웨이는 ‘같은 공간, 같은 목표’를 원칙으로 노동범죄센터를 조직했다. 즉, 말로만 하는 협업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공동 근무하는 행정체계를 만든 것이다. 노동범죄센터는 각 기관에서 파견된 담당자들이 함께 회의를 열고, 신고된 사건과 고위험 지표를 공유하며 합동 현장조사를 기획한다. 이런 구조 덕분에 복합적인 노동범죄에 대한 신속한 판단과 대응이 가능해졌다.
또한 이 센터는 단속과 수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예방’을 중심에 둔 활동을 펼친다. 고위험 업종(예: 건설·청소·외식·운수)의 사업장이나 신규등록 사업자 중 리스크 수치가 높은 곳을 사전에 식별하고, 행정조사나 교육 프로그램으로 개입한다. 사업주와 관리자에게는 법령 준수 교육을, 위반 가능성이 있는 구조에는 사전 경고를 발송한다. 단속 이전에 공정한 질서를 정비하는 접근법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같은 센터는 현재 노르웨이의 전국 주요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각 센터는 10~15명 규모의 상근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상시 협업 체계를 유지하며, 필요시 각 본청의 수사 및 감독 인력을 추가로 파견받기도 한다
각 기관은 본래의 법적 권한을 유지하되, 해당 기관의 권한 안에서 공동출동과 정보공유, 현장협업 체계 안에서 권한을 통합적으로 행사한다. 노동감독관은 즉시 사업장 출입과 조사권을 행사하고, 경찰은 형사사건으로 전환 가능한 사안을 분리해 수사에 착수하며, 세무당국은 사업자등록 취소나 과세 조치를 병행한다. 또한 사회보험청은 허위 수급 여부를 즉시 확인하여 보험급여 지급을 중단하거나 환수 조치에 나선다. 기관 간 정보 흐름과 권한 행사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한국의 노동현장은 여전히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임금체불·불법파견·산재은폐·외국인 노동자 착취 같은 문제는 복합적인데도 불구하고, 행정은 여전히 ‘칸막이 권한’을 고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실질적인 사법권이 없는 조사자’, 경찰은 ‘노동법에 문외한 수사자’, 검찰은 ‘입증책임 전가’로 소극적이다. 노동범죄는 종종 ‘경미한 행정위반’으로 오분류되거나, 사법행정의 변두리로 밀려난다.
노르웨이의 노동범죄센터의 경험은 노동범죄 대응이 강한 형벌과 더불어 보다 정교한 협업 시스템에서 출발해야 함을 보여준다. 기관 간 실시간 정보공유, 공동 개입, 예방 중심의 정책 설계야말로 노동시장 범죄를 줄이는 핵심 열쇠다. 이는 단순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권을 공공질서로서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민원행정 수준에 머물 것인가라는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의 노동범죄센터는 여러 행정기관들의 협업체제에 바탕해 운영됨으로써 국제노동기구(ILO) 81호 근로감독 협약이 규정한 ‘노동감독체제(labour inspection system)’의 모범 사례를 보여준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webmaster@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