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대재해 기소 ‘3대 사망사고’ 70% - 중대재해 추적기 ③
추락·끼임·부딪힘 전체 기소 121건 중 88건 …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 대부분
노동자 사망사고가 단순히 ‘수치’로만 기록되고 있다. 각각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정부는 중대재해에 강력한 제재를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에 대해 면허 취소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6개월이 흐르는 동안 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진단하고 감시해야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검찰 기소와 재판 현황을 전수조사해 10여차례에 걸쳐 실무상 적용 문제점과 개정방향 등을 모색한다. <편집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 중 산업재해 3대 사고유형(추락·끼임·부딪힘)이 약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후진국형 재해’다.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경영책임자가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해석된다. 고용노동부가 전국 고위험 사업장이 핵심 안전수칙을 지키는지 불시 점검·감독에 나선 만큼 향후 재래형 사고가 줄어들지 관심이 쏠린다.
5대 중대재해 95건, ‘추락사’ 35건 최다
12일 <매일노동뉴스>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27일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121건을 분석한 결과 산재 3대 사고유형인 추락·끼임·부딪힘이 88건으로 확인됐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검찰 공소장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5대 중대재해(추락, 끼임, 부딪힘, 화재·폭발, 질식)로 넓히면 95건이다. 전체 기소의 80%에 육박했다.
중대재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은 ‘추락사’다. 전체 기소 중 29%를 차지했다. ‘끼임’ 사망사고 역시 34건을 기록했다. 추락과 끼임 사고를 합하면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었다. ‘부딪힘(맞음)’은 19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깔림(11건), 화재·폭발(6건), 감전·매몰(각 4건), 베임(2건) 순으로 파악됐다. 직업성 질병·관통·열사병·익사·중독·질식 사고는 각각 1건씩 발생했다.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재래형 사고가 두드러졌다. 추락사 사례를 보면 공사현장에서 작업하던 중 노동자가 사다리에서 추락해 숨지거나 안전난간 없이 홀로 작업하다가 떨어져 숨기는 경우가 많았다. ‘중대재해 1호 선고’인 경기 고양시 건설사 온유파트너스 사건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던 하청노동자가 추락해 숨진 사고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는 2022년 5월14일 병원 건물 5층(약 16.5미터 높이)에서 약 94킬로그램의 고정앵글 5개를 안전대 없이 운반하던 중 추락했다. 당시 온유파트너스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1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안전모도 미지급, 최소한의 보호조치 없어
특히 기초적인 안전 보호장치가 없어 일어난 사고가 기소로 이어졌다. 화학물질 제조업체인 와이엠티(YMT) 사례다. 와이엠티 대표이사는 2022년 4월22일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명이 안전난간이 개방된 상태에서 자재를 옮기던 중 3.9미터 아래로 추락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기소됐다. 사고 당시 회사는 노동자에게 안전모와 안전대를 주지 않았고, 추락방호망도 설치하지 않았다. 재해자는 무게 77킬로그램의 자재를 들다가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안전모와 안전대만 갖췄더라도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던 셈이다.
34건 기소된 ‘끼임’ 사고도 마찬가지다. SPC그룹 계열사인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 사고가 대표적이다. 2022년 10월15일 20대 여성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를 배합하다 혼합기에 끼어 숨졌는데, 혼합기 사용법과 안전수칙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홀로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혼합기에는 ‘손 접촉 금지’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과 관련한 표지판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SPL 전 대표이사는 올해 1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기업도 재래형 사고 수차례, 추락사 5건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은 사고도 주를 이뤘다. 경산시 골판지 제조업체 삼성포장의 사례를 보면 기계 설비 운전원이 2022년 3월30일 골판지 가공 기계의 회전축에 윤활유를 주입하던 중 작업복이 회전축 사이에 말려들어 가면서 즉사했다. ‘방호덮개’가 없어 회전축이 외부에 노출됐던 게 원인이었다.
올해 6월2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한전KPS 하청업체(한국파워O&M) 소속 노동자 고 김충현(50)씨 사고에서도 반복됐다. 김씨는 약 38센티미터 정도의 길이의 타원형 막대 형태인 공작물(CVP 벤트 밸브핸들)을 깎다가(절삭) 회전축에 옷이 말려 들어가면서 사고를 당했다. 비상정지장치가 있었지만 홀로 작업한 탓에 기계를 멈출 수 없었다.
‘대기업’도 후진국형 사고는 반복된 것으로 파악됐다. 대기업 계열사의 중대재해 기소 사건(13건) 중 추락사가 5건으로 가장 많았다.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SK그룹 계열사인 삼강에스앤씨(현 SK오션플랜트)를 비롯해 △호반산업 △중흥토건 △아이에스동서 △KCC건설 등이 기소 명단에 올랐다. ‘끼임사’는 4건(현대스틸산업·SPL·한국공항·세아베스틸)을 기록했다. 깔림 2건(삼표산업·SK멀티유틸리티), 부딪힘(한화오션)과 감전(KCC건설)이 각 1건으로 뒤를 이었다. 대기업도 산재 3대 사고유형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최소한 안전조치 무시, 미필적 고의”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최소한의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사고 발생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이종진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현장에 안전모가 제대로 지급되거나 방호망만 제대로 설치하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가 대부분”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업장 상당수에서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마저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법무부가 의무 위반사항, 기소의견 등을 일반인에게 상세히 공개해 집행 실태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며 “이를 방기하면 미필적 고의로 입법의 형해화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감독을 통해 적발된 사업장 중 추락·끼임·부딪힘 관련 안전조치 위반이 전체의 54.4%(2만9천716건)를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최근 5년간 산업안전 감독 결과에 따른 법 위반 유형별 적발 현황이다. 3대 사고 관련한 위반 건수는 2021년 4천560건, 2022년 7천569건으로 65.9% 증가했고 2023년 7천698건, 2024년 7천340건으로 7천건을 넘겼다.
중대재해 특별취재팀(홍준표·강한님 기자)